발표작

[스크랩] 줄타기 외 2편 - 안행덕

湖月, 2008. 3. 1. 14:13

줄타기 외 2편


안행덕


아슬아슬한 줄 위에서
익살을 떨며 외줄을 타는 저 광대
줄 아래 선 나는 손에 땀이 난다


광대의 화려한 손짓 발짓에
관중은 환호로 찬사를 보내지만
안쓰러운 발끝의 매듭을 붙들고
마음 졸이며 애간장 태우는
외로운 외줄의 심사를 아는 이가 있는가
사무치게 그리운 바람이
내 가슴에 신음처럼 전해 온다


땀에 젖은 얼룩은 엄니의 눈물 표정
알지 못할 내일을 피에로의 발짓에
맡기고 외줄처럼 날 잡아주시던 손
알 듯 말 듯한 그 정을 내 이제
어렴풋이 알 것 같은데
인생의 외줄에 선 나
바람과 세월이 함께 줄을 탄다.

 


 
살다보면

 


너를 만난 것은 우연이 아닐지도 몰라
어디든 둥지를 틀려고 살피다
마음먹고 내게 덤벼든 거야
작은 풀잎처럼 부드럽게
이슬처럼 영롱하게
안개처럼 보이지 않게
내 안에 둥지를 틀었지
하늘과 땅 사이 다 찾아보아도 당신 같은 이 없다는
감언이설로 작은 초가를 허물었지
모두다 떠돌이 세상살이
하필이면 왜 당신이었나
살면서 수없이 물음표를 던지고
가장 서러운 날엔 말없이 돌아서서
그렇게 울기도 했지
살아갈수록 서툴기만 한 세상
맨몸 맨발로 버틴 삶이 서러워
작은 초가는 벅찬 대들보를 말없이 놓고 싶었지
와르르 무너지는 심장 소리에
힘겹게 붙드는 걸 너는 모르지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빈집이 너무도 서러워
괜스레 눈물이 나고 그냥 스르르 무너지고 싶어
사랑한다는 너의 그 말이 생채기가 되어
보랏빛 그늘에서 꽃이 지고 있다

 

 

蘭雪軒

 


선계(仙界)를 그리며
갓 핀 부용처럼 수련처럼
애잔하게 피었다 짧은 생을 애달게 울던 사람아
양류지사(楊柳枝詞) 흐르는 그대 거닐던 호반에
눈썹 같은 버들잎 사이로
저고리 고름 풀리듯 대금 한 자락 휘감긴다.
물속의 어둠으로 묻힌 그대의 시간이
하나 둘 일어나 달빛처럼 호수를 흔들어도
선계의 도량 읽어내는 재주 없어
달빛 차가워 서럽기만 한 난초꽃 그림자이어라
채련곡(採蓮曲)에서 연꽃 따 던져놓고 반나절 부끄럽다
하더니 이제는 애타는 그리움 없고
부용꽃 떨어지는 애절한 사연 같은 일 없을 터
그래서 나도 그대 계신 선계를 그리워하네.

 

 

 

안행덕
시와창작 시 부문 신인상 수상. 시와산문 동인. 부산 문인회 회원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출처 : 월간 광장
글쓴이 : 임정일 원글보기
메모 :

'발표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안행덕 시인 詩 읽기  (0) 2008.09.05
모던포엠.포커스/ 안행덕  (0) 2008.05.30
[스크랩] 지나가는 비 외 2편 - 안행덕  (0) 2008.03.01
문예지 발표 ㅡ 모던포엠  (0) 2008.01.23
문예지 ㅡ 광장  (0) 2008.0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