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수 없는 남자 / 안행덕
여보 밥 여보 물
눈 뜨면 시작하는 이 남자
피도 살도 섞이지 않은 촌수도 없는 그에게
영혼을 송두리째 저당 잡힌 줄도 모르고
장미는 향기만 있는 줄 알았지
하늘같이 받들라 이르시며
눈물 글썽이시던 친정어머니
어쩌자고 이제야
향기 속에 숨은 가시가 보이는지
세상에서 가장 가깝고도 먼 사이
티격태격 된다 안 된다 맞다 틀리다
칼로 물 베기라 했나요
맞아요, 물를 닮았나 봐요
벤 자리 또 베어도
금방 아무는 상처는 물 같아요
흰 서리 덮이는 세월이 야속해도
작은 봉당에서는 된장찌개 향기롭고
뒤꼍에서 여보 소리가 담을 넘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