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의香氣

풍경, 아카이브 / 전기철

湖月, 2009. 6. 28. 22:56

 

 

풍경, 아카이브 / 전기철

 

아버지와 결혼한 걸 후회한 어머니가

마늘밭에서 아버지를 하나씩 뽑고 있을 때

어머니를 하와이 해변으로 옮긴다. 포토샵으로

비키니를 입히고 선글라스도 끼워준다. 물거품을 따라

해변이 파랗게 펄럭인다.

매운 해변에서 어머니는 콜록거린다. 오! 불쌍한 어머니

마늘 냄새를 지운 술잔에 데킬라를 붓는다. 재즈에 맞춘

어머니, 마늘 해변이 울퉁불퉁하다.

멀건 술잔에 갇힌 아버지가 번진다.

가늠할 수 없는 해변의 여인

하늘에다가 무거운 톤을 얹는다. 출렁이는 어머니

어지럼증에 시달린 젊은 아버지를 클릭해 온다.

색다른 아버지, 혹은 빌려 온 어머니

피식, 해변에 웃음집이 생긴다.

어머니, 모조 아버지의 팔짱을 끼고 집으로 들어간다.

아버지였던 아버지를 통 잊어버린 채

거울 밖에서 나는

어머니였을 어머니를 암만 찾으려 해도 적절한 색을 찾을 수 없으니

답답하기만 하여

계절을 바꿔 보기도 하고 해변을 바꿔 보기도 하지만

낯선 풍경 위로 마늘 냄새가 기우뚱거리며 번질 뿐

 

 게재지 : 학산문학

 시향. 여름호 < 현대시 펼쳐보기>

 

전기철 시인


1954년 전남 장흥 출생. 전남대, 서울대 대학원 석.박사.
<심상>으로 등단,
시집 <나비의 침묵> <풍경의 위독> <아인슈타인 달팽이>
평론집 <민족문학과 비평정신> 번역서 <시가 있는 금강경>
 현 '시경' '유심' 편집위원 . 만해학회 사무국장.

숭의여자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詩의香氣'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무지느러미/ 이민화  (0) 2009.07.02
햇살을 씹다 / 유대산  (0) 2009.06.28
가끔은 흔들리며 살고 싶다 / 구재기  (0) 2009.06.28
유도와 긴 잎으로 / 조용미  (0) 2009.06.25
푸른 신발 / 안도현  (0) 2009.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