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전 풍경(火田 風景) / 안행덕
병풍처럼 둘러선 태백산맥 끝자락
천둥과 비바람 백 년을 흔들어도
빛바랜 사진첩인양
하얀 구름모자 삐딱하게 쓰고 낡은 집 한 채
핼쑥한 낯빛으로 누구를 기다린다
촘촘한 너와(瓦) 목(木) 사이마다
비릿한 생선 비늘 같은 너와 지붕
푸른 이끼로 세월을 새겨 넣고
허기진 가난과 고난의 이력을
역사처럼 펼쳐놓은 회색빛 풍경
풀잎 스쳐 간 벌레들 울음소리
물 한 방울 흘러간 흔적까지 선명하다
짓궂은 바람의 어릿광대에, 반쯤 열린 문짝
추억처럼 묶어둔 역사 한 페이지
시큰거리고 덜컹거리는 무릎으로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듯 기우뚱 엉거주춤
너와집 한 채 쓰러질듯 서있다
주인이 드나들던 문틈으로
보랏빛 엉겅퀴꽃 한 발을 들여 민다
도인촌(道人村)에서/ 안행덕
지리산 청학동 삼성궁에 단풍이 들면
굳이 도인이 아니라도 좋다
누구라도 仙人이 되는 여기
홍조 띤 이파리 돌탑을 유혹하면
정중하고 근엄하게 익은 햇살 받으며
고조선 단군 설화를 설법하네
가을에 기대어 들어 보자
침묵의 돌탑에 서린 사연을
고조선 천지화랑과 청학은 어떤 사인지
푸르고 큰 날개 밑에 알을 품은 청학이
긴 목으로 삼신봉을 두루 살펴 천적을 경계한다
곱디고운 추억 같은 단풍으로 치장한 청학동에서
근심도 시름도 다 내려놓고 스스로 단풍들어라
월간 문예지「釜山文學」 2022년 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