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作

화전 풍경

湖月, 2022. 6. 15. 17:12

 

화전 풍경(火田 風景) / 안행덕

 

 

병풍처럼 둘러선 태백산맥 끝자락

천둥과 비바람 백 년을 흔들어도

빛바랜 사진첩인양 

하얀 구름모자 삐딱하게 쓰고 낡은 집 한 채

핼쑥한 낯빛으로 누구를 기다린다

 

촘촘한 너와(瓦) 목(木) 사이마다  

비릿한 생선 비늘 같은 너와 지붕

푸른 이끼로 세월을 새겨 넣고

허기진 가난과 고난의 이력을

역사처럼 펼쳐놓은 회색빛 풍경

풀잎 스쳐 간 벌레들 울음소리

물 한 방울 흘러간 흔적까지 선명하다  

짓궂은 바람의 어릿광대에, 반쯤 열린 문짝

추억처럼 묶어둔 역사 한 페이지

 

시큰거리고 덜컹거리는 무릎으로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듯 기우뚱 엉거주춤 

너와집 한 채 쓰러질듯 서있다 

 

주인이 드나들던 문틈으로

보랏빛 엉겅퀴꽃 한 발을 들여 민다 

 

 

 

도인촌(道人村)에서/ 안행덕

 

 

 

지리산 청학동 삼성궁에 단풍이 들면

굳이 도인이 아니라도 좋다

누구라도 仙人이 되는 여기

홍조 띤 이파리 돌탑을 유혹하면

정중하고 근엄하게 익은 햇살 받으며

고조선 단군 설화를 설법하네

 

가을에 기대어 들어 보자

침묵의 돌탑에 서린 사연을

고조선 천지화랑과 청학은 어떤 사인지

 

푸르고 큰 날개 밑에 알을 품은 청학이

긴 목으로 삼신봉을 두루 살펴 천적을 경계한다

곱디고운 추억 같은 단풍으로 치장한 청학동에서

근심도 시름도 다 내려놓고 스스로 단풍들어라

 

 

 

 

월간 문예지釜山文學」 2022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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