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사
송찬호
요즘 이곳 시골에서
혼례를 올리기 위해서는
바다 건너
사막 너머
먼 데서 신부를 데려와야 한다
예식은 읍내 식장까지 갈 필요가 없다
창밖 지붕 너머 들판과 냇가 건너
멀리 앞산까지 온통 뿌연 예식장
드디어 신부가 온다
누우런 면사포로 얼굴을 가리고
산 넘어 신부가 날아온다
신부의 가는 허리에서 방울 소리 울리고
속눈썹은 회초리처럼 길고
양털 가죽신을 신은 걸 보아
신부는 유목의 바람 세찬 곳에서 오나 보다
혼례는 하루 종일 계속 된다
이 잔치를 거들고 즐기느라
목련과 산수유도 종일
눈이 따갑고 목이 아프다
그런데, 혼수용으로 신부를 따라온
염소구름은 어떻게 한다지?
이 뿌우연 봄날, 고삐를 매지 않으면
금방 사라져버릴 터인데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
송찬호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
입안의 비린내를 휑궈내고
달이 솟아오르는 창가
그의 옆에 앉는다
이미 궁기는 감춰두었건만
손을 핥고
연신 등을 부벼대는
이 마음의 비린내를 어쩐다?
나는 처마 끝 달의 찬장을 열고
맑게 씻은
접시 하나 꺼낸다
오늘 저녁엔 내어줄 게
아무것도 없구나
여기 이 희고 둥근 것이나 핥아보렴
민들레역
송찬호
민들레역은 황간역 다음에 있다
고삐 매여 있지 않은 녹슨 기관차 한 대
고개를 주억거리며 여기저기
철로변 꽃을 따 먹고 있다
에구, 이 철없는 쇳덩이야
오목눈이 울리는 뻐꾸기야
쪼르르 달려나온 장닭 한 마리
대차게 기관차 머릴 쪼아댄다
민들레 여러분, 병아리 양말 무릎까지
모두 끌어올렸어요? 이름표 달았어요?
네 네 네네네, 자 그럼 출발!
민들레는 달린다
종알종알 달린다
민들레역은 황간역 다름
-송찬호 시집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 문학과지성사,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