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의香氣

나무도 가슴이 시리다/이정록

湖月, 2009. 6. 17. 10:44

 

나무도 가슴이 시리다 / 이정록

 

 

 남쪽으로

 가지를 몰아놓은 저 졸참나무

 북쪽 그늘진 둥치에만

 이끼가 무성하다

 

 아가야

 아가야

 미끄러지지 마라

 

 포대기 끈을 동여매듯

 댕댕이 덩굴이

 푸른 이끼를 휘감고 있다

 

 저 포대기 끈을 풀어보면

 안다, 나무의 남쪽이

 더 깊게 파여 있다

 

 햇살만 그득했지

 이끼도 없던 허허벌판의 앞가슴

 제가 더 힘들었던 것이다

 

 덩굴이 지나간 자리가

 갈비뼈를 도려낸 듯 오목하다

 

시집 < 가슴이 시리다> 2009, 육필시집

 

 

 

 

     

         이정록 시인


1964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나 공주사범대학 한문교육과를 졸업
199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혈거시대' 당선
1994년 시집<벌레의 집은 아늑하다>
1996년 <풋사과의 주름살>
1999년< 버드나무 껍질에 세 들고 싶다>
2001년 <제비꽃 여인숙>
2006년 <의자>

2009년 <가슴이 시리다> 육필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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