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의香氣

제4회 윤동주상 문학부문 대상 수상작 - 놀랜 강 / 공광규

湖月, 2009. 6. 18. 21:09

 

놀랜 강

 

          - 공광규 -



강물은 몸에

하늘과 구름과 산과 초목을 탁본하는데

모래밭은 몸에

물의 겸손을 지문으로 남기는데

새들의 지문 위에

발자국 낙관을 마구 찍어대는데

사람도 가서 발자국 낙관을

꾹꾹 찍고 돌아오는데

그래서 강은 수천 리 화선지인데

수만리 비단인데

해와 달과 구름과 새들이

얼굴을 고치며 가는 수억 장 거울인데

갈대들이 하루 종일 시를 쓰는

수십억 장 원고지인데

그걸 어쩌겠다고?

쇠붙이와 기계소리에 놀라서

파랗게 질린 강

 

 

 

무량사 한 채 / 공광규

 

오랜만에 아내를 안으려는데

" 나 얼마만큼 사랑해!"라고 묻습니다.

마른 명태처럼 늙어가는 아내가

신혼 첫날처럼 얘기하는것이 어처구니없어

나도 어처구니없게 그냥

" 무량한 만큼! " 이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무량하다니!

그날 이후 뼈와 살로 지은 낡은 무량사 한 채

주방을 요리하고

화장실서 청소하고

거실에서 티브이를 봅니다.

내가 술 먹고 늦게 들어온 날은

목탁처럼 큰소리를 치다가도

아이들이 공부 잘하고 들어온 날은

맑은 풍경 소리를 냅니다.

나름대로 침대 위가 훈훈한 밤에는

대웅전 꽃살문 스치는 바람소리를 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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