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랜 강
- 공광규 -
강물은 몸에
하늘과 구름과 산과 초목을 탁본하는데
모래밭은 몸에
물의 겸손을 지문으로 남기는데
새들의 지문 위에
발자국 낙관을 마구 찍어대는데
사람도 가서 발자국 낙관을
꾹꾹 찍고 돌아오는데
그래서 강은 수천 리 화선지인데
수만리 비단인데
해와 달과 구름과 새들이
얼굴을 고치며 가는 수억 장 거울인데
갈대들이 하루 종일 시를 쓰는
수십억 장 원고지인데
그걸 어쩌겠다고?
쇠붙이와 기계소리에 놀라서
파랗게 질린 강
무량사 한 채 / 공광규
오랜만에 아내를 안으려는데
" 나 얼마만큼 사랑해!"라고 묻습니다.
마른 명태처럼 늙어가는 아내가
신혼 첫날처럼 얘기하는것이 어처구니없어
나도 어처구니없게 그냥
" 무량한 만큼! " 이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무량하다니!
그날 이후 뼈와 살로 지은 낡은 무량사 한 채
주방을 요리하고
화장실서 청소하고
거실에서 티브이를 봅니다.
내가 술 먹고 늦게 들어온 날은
목탁처럼 큰소리를 치다가도
아이들이 공부 잘하고 들어온 날은
맑은 풍경 소리를 냅니다.
나름대로 침대 위가 훈훈한 밤에는
대웅전 꽃살문 스치는 바람소리를 냅니다.
'詩의香氣'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변압기. 담쟁이 / 전건호 (0) | 2009.06.24 |
---|---|
드라이 플라워외2편 ㅡ 문인수 (0) | 2009.06.19 |
꽃신 / 김인욱 (0) | 2009.06.17 |
나무도 가슴이 시리다/이정록 (0) | 2009.06.17 |
마중물 / 윤성학 (0) | 2009.06.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