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과 바람과 詩(詩集)

노루발 / 안행덕

湖月, 2012. 3. 4. 17:23

 


노루발   / 안행덕


먼 하늘 그리워 울음 삼킨 숲

잎마다 푸른 그늘이 내려앉은 그곳

어둠을 빠져나온 여린 노루발 꽃송이

전설을 방울방울 피워내고 있다


은혜를 아는 노루는

산에만 발자국을 찍는 게 아니었구나

금세 무너질 것 같은 옹색한 달셋방

달빛을 콩콩 찍고 가는 발자국도 있다


매일같이 낯선 길을 돌고 도는

수선 집 재봉틀에 달린 노루발

허기진 발로 밥 한 공기 찾아

지구를 몇 바퀴나 돌았을까

구닥다리 낡은 세월 뒤집어가며

이웃의 서러움도 꾹꾹 밟아 기워내는 발


툭툭 뜯어진 옷깃, 털어내는 발톱 끝에

싸라기처럼 묻어나는 실밥을 먹고

야윈 발가락이 절룩거릴 때마다

덧대고 이어주면 드디어 빛나는 진실

오늘도 생의 늑골 밑을 환하게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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