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루발 / 안행덕
먼 하늘 그리워 울음 삼킨 숲
잎마다 푸른 그늘이 내려앉은 그곳
어둠을 빠져나온 여린 노루발 꽃송이
전설을 방울방울 피워내고 있다
은혜를 아는 노루는
산에만 발자국을 찍는 게 아니었구나
금세 무너질 것 같은 옹색한 달셋방
달빛을 콩콩 찍고 가는 발자국도 있다
매일같이 낯선 길을 돌고 도는
수선 집 재봉틀에 달린 노루발
허기진 발로 밥 한 공기 찾아
지구를 몇 바퀴나 돌았을까
구닥다리 낡은 세월 뒤집어가며
이웃의 서러움도 꾹꾹 밟아 기워내는 발
툭툭 뜯어진 옷깃, 털어내는 발톱 끝에
싸라기처럼 묻어나는 실밥을 먹고
야윈 발가락이 절룩거릴 때마다
덧대고 이어주면 드디어 빛나는 진실
오늘도 생의 늑골 밑을 환하게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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