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과 문학의 본질
안행덕
해마다 5월이면 향수를 불러내는 향기가 있다.
매일 오르던 뒷산, 무심히 걸어가던 내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진한 향기에 아~ 하며 올려다보니 하얀 아카시아꽃
이 활짝 피었다. 해마다 5월이면 잊고 살던 추억의 향기를 만난다. 온산에 향수를 뿌려 놓은 듯 진한 향기에 취해
눈 감으면 내 유년이 보인다.
내가 매일 오르는 윤산 중턱에 아카시아 군락지가 있어 봄이 무르익으면 온산이 아카시아 향기로 가득하고 향기에 취하면 아주 오래전 어린 시절 하얀 꽃, 아카시아가 생각난다. 찔레꽃이나 아카시아꽃은 유난히 향기가 짙고 멀리서도 그 꽃의 냄새만으로도 어릴 적 추억이 떠오르는 향수의 꽃이다.
찔레꽃잎도 찔레순도 배고픈 아이들에게 먹거리였던 시절 아카시아 꽃잎은 더없이 맛있는 꿀이 들어 있는 먹거리가 아닌가? 요즘 아이들에게는 전설 같은 이야기지만 전전 세대 배고픈 어린 시절을 겪은 어른들은 추억의 향기를 잊지 못할 것이다. 이원수의 찔레꽃을 번안한 동요에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가 “엄마 엄마 부르며 따먹었다오” 하는 노랫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금방 알 수 있는 사람, 바로 우리(6~70세) 세대다.
엄마 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
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
배고픈 날 가만히 따 먹었다오
엄마 엄마 부르며 따 먹었다오
아카시아꽃이나 찔레꽃잎을 따 먹어본 사람은 이 노랫말에 눈물짓던 아련한 추억 속에 눈시울이 붉어질 것이다. 추억 속에 있던 일 그 사연을 그대로 적어도 시가 되고 감동을 준다.
나이 들어 여유로운 시간에 글을 쓰고 아침 등산로를 걷는 일은 노년의 행복이라 생각한다.
아침 등산로에서 만나는 아카시아 향기를 만나면 추억이 스치고 추억 속에 시가 있고 눈물이 있다. 자기 일생을 미리 알고 가는 사람은 없다. 그러니 삶의 방향을 조절하거나 비켜 갈 수는 없는 것이다. 삶의 유속에 침몰당하지 않으려고 저항 할 수 있는 일은 글을 쓰고 상상의 범위를 넓혀 나가서 신선한 발상으로 사물을 관찰하고 자연과 대화하는 법을 체득하는 일이다. 우연히 시의 씨앗을 만나는 일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이고 삶의 유속에 침몰 되지 않는 일이다. 살아가면서 가슴 떨리는 시를 만난다는 것은 지극히 사소한 일인 것 같지만, 시인으로 자부하는 나에게는 아주 행복한 순간이고 삶의 키를 잘 돌리고 있다는 자부심도 생기는 일이다. 우연히 만난 들풀 하나도 꽃 한 송이도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나의 시가 되고 친구가 되어 수렁에 빠지는 나의 손을 잡아주고 망망한 바다에 등불이 되기도 한다.
글을 쓰는 일은 혼자서 하는 일이고 인내를 감내하며 고독과 싸우는 일이다.
그러나 문학 단체 활동은 혼자서 할 수 없다.
문학 단체를 통해 자신의 문학세계를 넓히고 자성과 자기연마 정보교환 인간교류 등을 통한 문학 본질적인 가치 추구를 실현하고 이론과 토론이 상생하여 즐거움의 기회를 만들기 위함이다. 문학 단체 활동은 문인에게 필요하지만 좋은 글을 쓰기 위한 도구는 되지 못한다.
이상적인 문학은 무엇인가?
글로서 독자에게 감동을 주고 심금을 울리는 것, 글로서 대중에게 행복을 주는 것이다.
문학은 언어 예술이다. 예술은 미를 추구하는 장르이다. 예술에는 음악 미술 무용 문학 등 표현기법이 다른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감동을 주고 쾌락을 주는 인간만이 누리는 고급 오락이라 생각한다. 문학의 본질 역시 상상력에 바탕을 둔 글쓰기, 미적인 범주를 포괄한 언어의 표현 예술이다. 문학을 위하여 살아있는 생명력 있는 표현을 찾아야 한다. 과학적이거나 법 이론적인 전문 용어보다는 흥미롭고 서정적이며 감동적인 예술적 표현을 찾아 아름다운 글을 쓰는 것이 시인이 해야 할 일이며 문학의 본질이 아닐까? 물론 높은 학문을 터득한 학자나 박사들은 더 많은 이론과 문학의 본질을 이야기하겠지만 이론과 학문으로만 글을 쓰는 게 아니다 인간이 타고난 감성과 상상력 심성이 노력 여하에 따라 좋은 글을 쓸 수 있다고 믿는다. 등산로에서 만난 아카시아 향기만으로도 추억을 그리고 추억 속에서 만난 사랑으로 멋진 소설과 시가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오늘 등산로에서 만난 아카시아 향기에서 시론을 만나고 문학의 본질을 만나 시인과 문학의 본질을 가늠해 본다.
2020년 계간 부산시단 가을호 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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