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의香氣

[스크랩] 느리게 가는 귀 / 정용화

湖月, 2013. 2. 17. 18:14

느리게 가는 귀 / 정용화

영안실 옆 풀밭
달팽이가 느리게 기어가고 있다

사람이 죽어도 귀의 감각은 남아있어
운명하셨습니다, 라는 의사의 말을 듣는다는데

눈, 코, 입 그리고 손발까지  

모두 열반에 들었는데

귀하나 달랑 남아, 아니 온몸이
귀가 되어 듣게 되는 마지막 소리,
슬피 우는 가족들 울음소리 아니면
유산을 놓고 싸움질하는 자식들 소리

혹은 물기 묻은 한숨소리
어떤 소리라도 둥글게 말아 들여
깊은 곳에 모아두지 않을까

귀는 호상이라는 말을 들으면
위로가 되는지 묻고 싶다, 차라리
깊은 산사의 처마 끝에 울리는
풍경소리나 가득 담아가면 어떨까 

달팽이가 여전히 풀밭을 기어가고 있다
누군가의 귓속에 살던 달팽이가 아닐까
세상의 마지막 소리를 무겁게 등에 짊어지고
열반을 향하여 천천히 천천히 가고 있다
 

 

시집 <바깥에 갇히다> 2008년 천년의시작 

출처 : 문학 한 자밤
글쓴이 : 湖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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