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의香氣

[스크랩] 어느 자해공갈단의 고백 / 전기철

湖月, 2013. 3. 24. 17:17

어느 자해공갈단의 고백 / 전기철

 

퍽치기나 자해공갈단이 되고 싶은 건 아니었어요.

돈과 결혼하려고 했지만

희망은 지명수배를 당했고

링 위에는 늘 수건이 던져졌어요.

돈에서는 왜 이렇게 피 냄새가 나는 걸까요.

 

지구에서 번지점프라도 하는 듯이

한밤의 침묵을 허물고

달리는 차에 뛰어 들어 피로 고통을 씻어요.

알리바바처럼 ‘열려라 참깨!’ 소리치며

저세상에 아는 사람이라도 있는 것처럼

생명선으로 뛰어들어요.

 

아무도 내 상처를 사려고 하지 않아요.

위조지폐조차 나를 사려고 하지 않아요.

찰나 속으로 서투르게 뛰어드는

나는 불행의 일기장이에요.

 

멀리서 바람잡이의 신호가 나풀거려요.

순간, 머릿속은 끊임없이 정권이 바뀌고

가슴은 늘 전쟁의 끝자락인 듯 쿵쿵거려요

누군가 하나님께 왼손으로 쓴 밀고장 때문에

거덜이 나버린 생에서 탈옥하고 싶어요.

 

스티브 잡스의 썩은 사과도 일을 내는데

나는 왜 불한당들의 액자 속에 갇혀있어야 하나요.

나도 다른 세상 속으로 성냥을 켜고 들어가

천사 놀이를 하고 싶어요.

 

‘사고 잦은 곳’ 팻말을 뽑아버리고

담뱃불로 어둠을 가꾸는 바람잡이의 신호에 따라

영영 낯선 사람이 되고 싶어

헤드라이트의 몽환속으로 오늘도 뛰어들어요.

 

시집『누이의 방』2013. 실천문학

 

 

 

전기철 시인


1954년 전남 장흥 출생.

시집 <나비의 침묵> <풍경의 위독> <아인슈타인 달팽이> <로깡때의 일기> <누이의방>

숭의여자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출처 : 문학 한 자밤
글쓴이 : 湖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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