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의香氣

자국들 / 이재무

湖月, 2018. 11. 16. 21:13

자국들       이재무



내 다니는 회사가 세 들어 있는 건물
입구 유리문에는 익명의 손자국들이 어지럽다
손자국을 힘껏 밀어야 문이 열린다
그러니까 아침에 나는 저 손자국들에
손을 대고 출근을 하고
저 손자국들에 손을 포갠 뒤
점심하러 나왔다 들어가고
저 손자국들에 내 자국을 묻힌 뒤
퇴근하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는 셈이다
저 손자국들 속에는 분명 내 것도 들어 있을 것이다
손자국들은 서로 포옹하거나 클린치하거나
후배위하거나 부둥켜안고 있기도 하다
놀랍지 않은가, 내가 얼굴도 모르는 이들
손자국들이 난교처럼 한 몸으로 엉켜 있다니!
저토록 은밀하게 서로의 체온을 공유하고 있다니!



 

ㅡ『시인동네』 (2018,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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