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행덕 시 세계

호월 안행덕 시인의 시를 읽고

湖月, 2013. 8. 29. 10:13

 

 

출처 카페 > 시산문(詩散門) | 이산
원문 http://cafe.naver.com/dalcho/40800
 

호월 안행덕 시인의 서러운 날의 시를 읽고

                                                                                             이산 이국헌



호월 시인님의 시를 접한 것은 언제나 자랑스럽습니다.

호월님의 시는 정갈하면서 섬세한 손길을 엿볼 수 있습니다.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우리가 일상에서 말하듯 평어체보다는 경어체로서 낮은 자세로 시를 짓는다는 것입니다.

시인은 시를 모시는 것입니다. 시 자체가 시인의 사모하는 대상이며 그 존경의 대상일 것입니다.

일전 월간문학에 발표한 “수의를 짓다.”에서의 시적 성찰은 어머님에 대한 사모와 존경스러움을 사후 세계에 안녕과 평안을 비는 매우 존엄한 시로 숭배하고 있습니다.



를 짓다/안행덕



떨리는 손으로

어머니 수의를 짓고 있습니다

머지않은 날

홀연히 가신다기에

노란 안동포 삼베 한 필 끊어다

어여쁘신 날개, 수의를 짓고 있습니다

빈손으로 왔으니 빈손으로 가야 한다고

주머니조차 만들면 안 된다 하십니다

이승의 맺힌 마음 저승으로 가져가면 안 된다고

매듭을 지어서도 안 된다고 하십니다

실 끝을 옭매지도 말라 하십니다

치자열매 노란 빛깔 흘러나오듯

어머니 지나오신 발자국

눈물에 번져 흐려집니다

한 많고 설움 많아 떨치기 어려운 세월

차마 놓지 못하시고

눈꺼풀 무겁게 붙들고 게십니다

훨훨 가볍게 한 세상 날아오르시라고

금빛 날개 고이 달아

어머니 수의를 짓고 있습니다.



<20108월호 월간문학 한국문인협회 발표>

 

아울러 격월간 자유 문예 2010년 봄 초대시 “수선화”와 같은 시를 보면 수선화에 어머니를 비유하여 애틋한 사랑을 담은 자식 된 도리를 다하는 겸허한 자세로 임하고 있습니다.


 

수선화/ 안행덕



언제나 말 없으시다

퍼런 피멍 보일까

앞가슴 단정히 여미신다

바람 잘 날 없는

층층시하의 고단한 세월

깊은 한숨은

잔잔한 수면위로

노랗게 풀어서 조용히 흘려보내시고

수줍은 미소로 그렇게 피어나셨다


소담스런 꽃망울 곱게 피워놓고도

언제나 다소곳이 기척 없으시다

밤새 돌아오지 않은 지아비는

하늘이라 정해두시고

찬바람 수선화만 가여워하시던 어머니


바람 따라가시려나

창호지에 귀 기울이신다

여유를 찾으시려는 듯

은빛 날개 나비처럼 접으시고

인고의 쓴 잔을 다 비우시고

, 떨어지신다



<격월간 자유 문예 2010년 봄 초대시 발표>



시인의 심성이 모두 진득하게 자리 잡은 우리의 여인상 같음을 보는 것입니다.

시인의 시적 구성 자체가 독자의 가슴에 차분히 가부좌를 틀도록 배려를 하는 것은 단출한 차 맛을 내는 그리고 매우 깊게 우러나오는 울림 그것이라 보겠어요.

매우 고분고분한 시적 형태입니다.


위와 같이 이번 작품도 심혈을 기울인 노고가 배어나 있습니다.

시 전문의 시적 형태는 총 5연으로 구성되었습니다.


1연은 화자가 가을비를 만나는 첫 장면입니다.

 

        우두커니 창밖을 보는 나

        바람처럼 나를 감싸 안는/ 커피 향에서

        너를 만난다



그윽한 향이 베이며 창가로 타고 흐르는 가운데 평어체이면서 구어체적 기술로 가름합니다. 그것은 나를 낮추는 것으로 반해서 비 또한 너와 나를 나와 너를 서로 오가며 존립하는 상생의 인맥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1연의 2행을 다르게 구성하면 “바람처럼 감싸는 커피 향”은 퇴고의 결과로 볼 수 있을지 고민해 봅니다. 이유 중 하나는 1행의 “나”와 2행의 “나”는 모두 너를 위한 시선이므로 그 부속은 바람의 커피 향이라는 함축적 의미가 가을비로 담겨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복선을 깔아 놓은 구도는 화자 속의 청자와 청자 속의 내가 존재하는 숨은 뜻이 있지 않을까 고민해 봅니다.


2연에서는 빗소리에 상념을 걸어 비가 내리는 모습 그 자체에 날개를 형상화합니다.


세월에 꺾인,/

너의 야윈 날개 가여워

자꾸만 가슴이 시려 오는데

천년만년 살자던/

그 소리

나를 잡고 놓지 않습니다

비가 날개를 펴고 내리는 모습처럼 각인되는 시인의 고찰은 멋지십니다.

2연은 의도적으로 필자가 구성을 재조립해 봤습니다. 시구의 하나의 행들이 마치 깊은 뜻을

담고 있기에 행을 갈라 놓았습니다.


2연의 1행의 “세월에 꺾인” 시구는 여인의 어깨에 짊어진 삶이겠고, 그 세월에 꺾인 날개는 가을을 타는 여인의 야윈 모습일 것 같고 또한 비의 자태는 마치 영원할 것 같은 데 사실은 비의 소리는 빗소리 자체에 울림을 반추해 놓기도 하거니와 인생에서 없어서는 안 된 눈물 같은 삶의 동반자에 이르기도 합니다. 동반자란 화자의 내면적 인생고라고 하겠지요. 그러므로 비는 흐를수록 더욱더 애틋하기도 하고 울어서 행복할 수도 있는 그 사랑이 넘치는 청사초롱 물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한 오백 년도 아닌 천년만년이라는 염원이 담긴 시구는 울림 그 자체라 보겠습니다.



3연의 빗장은 2연의 내면적 삶에서 자생한 인생고를 엿볼 수 있습니다.


울고 싶은 날 너무 많아

마음에 빗장을 걸었습니다.

(그 안에서만 울려고)


인고의 끝에 매달린 마음의 문에는 언제나 빗장이 걸어져 있습니다. 1행의”울고 싶은 날 너무 많아” 그 많고 많은 말을 다 접고 그야말로 단번에 빗장이 풀어내려는 의도적 모습이 엿보입니다. 아무래도”너무”라는 형용에 울고 싶은 우리네 여인들의 한 많은 마음처럼 그냥 우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열어 새처럼 울 수 있는 자유로운 모습을 상상하는 거라 보기에 오히려 역설적인 면에서는 내 안에서나마 걸어둔 틀에” 너무”보다 “매우” 울고 매우 원 없이 날고 싶은 소망이 담대하게 담겨 있다고 보겠어요.

그것은 3연의 4행이 더욱 진득한 의미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만 울려고) ” 이 시구는 의도적인 기법으로 시의 핵일 수도 있습니다. 마치 한을 표현합니다. 그 기호는 괄호 안에서 빗장을 걸고 마음을 여시겠다는 진솔한 표현을 일갈 합니다.



4연은 화자의 의중에 따라 더불어 가을비까지 소리 내 창가로 떨어집니다.


오늘따라 걸어둔 빗장 마디마디에

고인 눈물이 몸살을 합니다.

바다를 닮았는지 아우성을 칩니다


마음속에 담아둔 빗소리는 “오늘따라” 아우성을 치는 듯 수 없는 깃털이 시 삼백 수 마디마디마다 진득하게 떨어지죠. 심중에 고요를 깨우는 바다의 향연처럼 말이죠

바다는 애틋함이 묻어나는 가운데 참았던 서러움이 새롭게 떨어져나옵니다.

43행은, 더욱더 확고한 의도로 구성해 보면 “파도처럼 아우성을 친다고 하여도 ”

바다 또는 파도의 시적 깊음이나 형상이나 그 원형의 깊음은 같을 거라 봅니다.

바닷가 파도는 마치 부서지는 자체가 몸살로 비치기 때문이죠

밀물과 썰물의 상관관계가 어쩌면 인생고를 말하기 때문이죠

포말로 사라지는 형상이 소리로 전달되는 아우성의 의미를 독자는 가혹하게도 공감대를 형성하리 봅니다.

그러나 다소 한발 뒤로 접은 구성은 조심스러운 행보라 보겠습니다.

어째서 바다를 닮았는지에 대한 구체적 의미는 독자의 상상에 넘기는 의도입니다.

시는 그래서 읽고 낭송하고 그리워 다시 보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5연에서는 이처럼 고뇌하는 관점에서 불처럼 활활 타오르는 시의 맛을 볼 수 있습니다. 화자는 그제야 조용히 내리던 가을비를 맞이합니다.



마치 김탁구가 어머니를 생각하며 울면서 빵을 먹는 모습과 아들과 재회한 아버지의 눈물 젖은 빵을 보며 가슴이 투둑하고 덜컹 내려앉는 감동들이 생각나기 때문입니다.

52행과 4행이 마치 그렇게 비유되며 연상됩니다.

“투둑~”” 덜컹”

서막을 울리는 빗소리에 서러운 날이 마치 승화되어 눈물로 떨어지고 어깃장 놓인 빗장도 이때는 비바람에 덜컹 박차고 나와 가을 그 모퉁이로 빠져 갑니다.

시적 요소가 깊은 그림 속에 빠지게 하는 데는 꾸민 자체가 워낙 긴 장고 끝에 수를 던졌기에 가능하다고 여깁니다.

여기에선 그 의미를 더욱더 실감 있게 보이고자 급조한 행을 갈라 봤습니다.


소리 없이 내리던 가을비

유리창에 /

투 둑 /

너의 눈물로 떨어지고

내 마음에 걸어둔 빗장

덜컹

제멋대로 열립니다.



바람에 저절로 열리는 마음의 문이 스스로 빗장 풀리는 서정적 자아의 탈출이 시도되는 연출의 장면들은 호월님만의 숨결이 있는 소망의 시라 보겠습니다.


이렇듯 시의 연결이 또한 매우 좋습니다.

시의 구성으로 보와 고정시점에서 창가에 비가 내리는 모습을 담고 그것을 반추하는 인지의식과 주변의 정감을 담아 내는 탁월함이 빛났습니다.

시 짓기의 초심을 그대로 갖아와 시의 소재로 잘 삭혀 아름답게 일궈내는 손길 자체가 시인의 고찰이라 하겠습니다.

“수의를 짓다.”의 시처럼이나 한 땀 한 땀 결을 맺는 시 정신에 고무됩니다.


시는 이처럼 지어내는 게 가장 행복한 거라 믿습니다.

가정사도 이처럼이나 한결같을 거라 사료 됩니다.

오랜만에 시인의 내면적 삶을 배우는 날이 되어 기쁩니다.


       우두커니 창밖을 보는 나

       바람처럼 나를 감싸 안는 커피 향에서

       너를 만난다


세월에 꺾인, 너의 야윈 날개 가여워

자꾸만 가슴이 시려 오는데

천년만년 살자던 그 소리

나를 잡고 놓지 않습니다



울고 싶은 날 너무 많아

마음에 빗장을 걸었습니다.

(그 안에서만 울려고)



오늘따라 걸어둔 빗장 마디마디에

고인 눈물이 몸살을 합니다.

바다를 닮았는지 아우성을 칩니다



소리 없이 내리던 가을비

유리창에 투 둑 너의 눈물로 떨어지고

내 마음에 걸어둔 빗장

덜컹

제멋대로 열립니다.



[출처] (시산문(詩散門)) |<호월 시인의 서러운 날 시 전문>


 

 

이산 이국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