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 안행덕
실바람 살짝만 불어도
은사시나무
부끄러운 척 잎을 비튼다
바람이 조금만 아는 척
흔들어 주면
숲은 일제히 일어서서
남몰래 감추었던
숨겨둔 아름다운 은빛 밀어들
연서를 쓰듯 술술 풀어낸다
채워도 채워도 부실한 문장文章
백지 위를 오르락내리락 드나들며
쌓은 이력이라는 게
썼다 지워다 붙였다 뺐다
감추고 비틀다
은사시나무를 생각한다
스치는 바람에도, 아름다운 문장
슬슬 엮어내는 저력
숨겨둔 은빛 밀어는 얼마나 될까
길 잃은 바람 따라 헤매지 말고
숲에 들어가 저들의 속삭임이나
받아 적어 볼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