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목에 관하여
조창환
둥지에서 딱새 어미체온을 얻은 새끼 뻐꾸기는
눈 뜨자마자 제 곁의 딱새 알을 밀어낸다
어린 악마는 본성이 악행이고
눈먼 사랑은 본성이 희생이다
애벌레와 지렁이를 물어다주며
어린 악마를 지성으로 돌보는
어미 딱새의 맹목의 휴머니즘이
적군을 무장시켜 제 새끼를 죽이는 줄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미 딱새는 제 몫의 온정에만 기막히게 충실하다
이것은 생물학적 이야기가 아니다
천적을 형제라 우기는 어느 눈먼 나라의 이야기다
「시인동네」2017년 9월호
「다층」2017년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