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

빛과 그리고 그림자

湖月, 2016. 11. 12. 11:50

물레가운다 / 안행덕

 

거친 손 지친 졸음

목화송이 놓지 못하고

 

밤새워 울어대는

물레와 같이 우는 건

 

목화밭 엉킨 실타래

풀지 못한 가슴앓이

​이탈 [離脫] / 안행덕                   

 

 

메마른 아스팔트

길 잃은 달팽이 혼자

 

제 몸보다 큰 집을 이고

느리게 기웃거린다

 

꿈처럼 아득한 길을

본향[本鄕] 찾아 헤맨다

 

 

새 달력을 걸며

 

乙未年 새해가 밝았습니다

요원한 것 같던 어둠을

가로질러 온 새해가

다시 살아보라고 꼬드깁니다


홀로 가는 외로운 여행길

먼 듯 멀지 않은 여행길

또 한 정거장을 지났습니다


늙어 가던 노쇠한 꿈

다시 발돋움해보라

은근슬쩍 열두 달을 내려놓고

수줍은 듯 벽에 기대섰습니다 


홀씨처럼 작은 소망하나

아직은 차마 날려 보내지 못하고

또 새 달력에 매달았습니다.


장 기연 선생님을 보내며/안행덕

 

 

나는 그대 소식 듣고 마음이 하얗게 되어

어디를 향해도 적막한 마음뿐이라오

빙설氷雪처럼 차가워지는 고독으로

얼어붙은 내 한숨 소리 들리나요

 

타오르던 연정戀情의 추억은

차디찬 밤바람에 멀어져가고

밤이 깊어 갈수록 그리움은 쌓여만 가는데

눈물로 살아나는 그대 향기

내 가슴에 꽃으로 피어나 웃고 있구려

 

만나면 먼저 손 내밀던

속 깊은 인정에

내 가슴이 따뜻해지던 장 기연 선생님

이제 언제 그 손 다시 잡아 볼 날 있으리오

기나긴 밤 미련未練에 취해서

파랗게 멍들어 가는 지인들이 있다는 걸 기억해주오

 

이승과 저승이 지척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쓸쓸한 마음에 한없이 멀어져가는 임이여

조금 먼저 간다고 너무 서러워 마오

얼마 지나면 다시 만날 날 있으리다

잘 가오. 장 선생님

 

빛과 그리고 그림자

 

 

어둠과 어둠 속에서

한 발을 내딛는 게 얼마나 힘든지

캄캄한 절망을 견뎌낸 사람은 알지

 

어둠의 휘장을 활짝 걷어내고

바다를 건너고 들판을 가로질러

진군하는 군대처럼 세상을 다 점령한 너도  

찬란한 그 빛을 잘라먹고

태연하게 누운 그림자

적요(寂寥)를 즐기며

싸릿대 끝에 앉아 조는 잠자리

그 작은 그림자 하나도 밟지 못하는

눈부신 태양  

찬란한 빛과 그리고 그림자

 

어둠이 방해하지 않는다면 

필경(畢竟) 아름다운 풍경이지 

 

봉숭아



첫사랑 설렘처럼


잠 못 이루고


하얀 밤으로 지샌


별 바라기 그리움


반달 손톱 물 들이던


젊은 날의 여름밤


순수가


꽃물 되어서 내려온 달빛인가




잠행潛行

 

 

이제 와 돌아보니

잠행이었네

태어날 때 여봐란듯이 고고성으로

태양처럼 눈부신 출발이었지

빛나는 젊음은 순간이고

걷다 보니 어둠으로 들어서고

길 잃은 나.

노상에서 멍하니 서 있네

지나온 길 돌아보니 아득하구나

저만큼 보이는 본향의 길

반갑기보다는 서러운 이맘

따라오던 그림자 사라지고

체념한 나 지그시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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