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과 바람과 詩(詩集)

새벽을 여는 여인

湖月, 2012. 3. 6. 17:14

 


새벽을 여는 여인 / 안행덕

 


눈꺼풀에 매달리는 잠을 달래며

천천히 앞치마를 두르는 손이 희고 여리다

어둠이 뒷걸음질치다 고요를 밟는 이른 새벽

졸음을 앞세워 새벽을 여는 사람 앞에

가로등, 졸린 눈을 끔벅거린다

희미하고 침침한 골목길

자벌레처럼 기어가는 담배꽁초

행인에 밟힌 납작 엎드린 광고지

상처 난 버려진 양심들이 떨고 있다

늘 허기지고 가난한 그녀의 하얀 손

버려진 양심들을 차곡차곡 줍는다


세상의 별이 되지 못한 사람

주체 못할 염문만 남긴 채 가버린 사람

미움도 여한도 다 싸안고 가버린 웬수

이 길거리에서 서성이면 어쩌란 말이냐

가난뿐인 앞치마에 젖은 손을 닦고

빛바랜 추억을 던지는 순간

그녀의 눈길을 와락 끄는 폐지

봄처럼 희망이 부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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