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시낭송의 성격
1. 낭독과 낭송
시 낭송회를 여기저기에서 연다고 하여 시인이나 시동호인들은 시간이 나는대로 참여하여 나름대로 의의를 갖고 있다.
그러나 시낭송이란 그저 자신이 쓴 시나 남이 쓴 시를 읽는 일이라는 것 정도로 인식을 하고 잇을 뿐 별다른 연습이나 각오를 하지 않는다.
읽는다는 것에 대하여 우리 글을 읽느느데 무슨 연습이 필요할까? 하는 너무 자신감 있는 자세는 오히려 거만하고 성의 없는 자세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내가 쓴 시인데 정확하게만 읽어주면 가수가 가사전달을 똑바로 해야하는 것처럼 실수없이 잘해내는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시낭송은 의미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쉽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있는 그대로 서술된 산문을 읽듯이 또박또박 일어 내릴 수도 없는 것이다.
시는 읽는 사람이 마음을 가라앉혀 차분하게 자신의 감정을 넣어 듣는 사람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도록 읽어야 한다. 아무리 목소리가 좋은 성우나 아나운서들이 시를 읽는 걸 보면 흉내를 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시를 읽는 맛을 제대로 낼 수 없기 때문에 발생되는 문제점이라고 볼 수 있다.
2. 낭송의 바탕
사람을 감정의 동물이라고 하는 것은 기분이 좋을 때와 기붕이 나쁠때는 감정 표현에 잇어 크게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기분이 좋을 때는 웃음을 띈 얼굴을 하거나 소리내어 환호를 하고 박수를 쳐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기분이 나쁠 때는 얼굴이 일그러지고 표정이 심각해 지거나 화를 내어 주위를 시끄럽게 하는 등 난동을 부리기도 한다.
시에 담겨져 있는 정서를 이해하고 적절한 소리의 높이나 소리의 속도, 그리고 소리의 색깔을 통하여 감정을 나타내야 한다. 예를 들어 식사를 제떼에 하지 못하여 시장끼가 있는 사람의 목소리가 너무 힘차다면 앞뒤가 맞지 않는 표현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렇다고 기분이 좋으면 우리의 감정이 담겨있는 일상의 대화에서 익숙해진 느낌으로 표현 되어야 한다. 낭송은 시를 쓴 사람이 표현 하고자 하는 의도를 듣는 사람에게 전달 해주어야 하기 때문에 감정이 담겨 있지 않고서는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시는 짧지만 짧고 단순한 말이 아니다. 하고자 하는 말들이 함축 되어져 있는 한편의 드리마와 같다. 한마디의 속삭임으로 잘못 인식되고 있어 섣불리 덤벼들고 있는 것이다. 시낭송은 바다밑 깊은 속에까지 가라앉아 인간 내면의 의식을 쓰다듬기도 하고 높은 파도가 거칠게 일어나 하늘을 삼칼 듯 치솟아 모두의 공감을 불러일으켜 내면의 의식을 흔들어 깨우기도 한다.
3. 낭송의 음악성
시는 과거로부터 노래하는 시라고 일컬어 왔다. 그러나 근래에 이르러 주지적인 시를 변화되면서 내용이 어려워져 독자와의 거리가 멀어지고 있는 형편이다. 일정한 운율을 가지지 않은 자유시를 낭송한다고 해서 딱딱한 산문 자체로 읽을 수는 없다.
행과 행을 연결 하면서 맺고 끊는 맛을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기 때문에, 창을 부르는 것처럼 소리 하나 하나에 쉼표와 이음표를 두고 구분을 해야 한다. 의미를 잘 전달해야 하는 의무와 감정을 표현해애 하는 의무가 결합하여야 비로소 낭송이라는 형태가 생겨난다. 그 결합으로 음악이 흐르고 그 이미지는 음악에 실려 움직임으로 의식 속에 파고드는 것이다.
음악성은 낱말과 낱말 사이에서, 행과 행에서 연과 연에서 살아 있어야 한다. 그것은 끊어주고 이어주는 매듭이 분명해야 의미가 살아나면서 낭송으로써 성공 여부가 판가름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위 노래로 시낭송을 하는 사람을 가수라고 부르거나 시낭송으로 노래를 부르는 사란을 시인이라고 부르는 애교가 섞인 말을 들을 정도로, 낭송에 없어서는 안되는 중요한 요소가 자체의 음악성과 배경음악이라는 환경 속에서 호흡을 같이 한다.
그러나 배경 음악이 필요하다 하더라도 호흡이 잘 맞게 고르지 못하면 차라리 배경음악 없이 그냥 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4. 낭송의 웅변성
시는 낭송하는 사람이나, 시를 쓴 사람의 생각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데 목적을 갖고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해서 똑같은 억양으로 밋밋하게 읽어나갈 수가 없다. 강조해서 의미를 살려 주입시키고자 하는 의도의 부분을 말락하게 속삭여보는 웅변의 상황을 맛보기도 한다.
그러므로 시낭송은 많은 사람들이 감상을 하고 있는 대상이 되어야 한다. 웅변은 어느 정도 긴말로 설득을 시켜주지만 시 낭송은 대체적으로 짧게 함축되어진 시로 암시하여 공감대를 형성하며 감동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어림 생각으론 많은 청중들 앞에서 자신의 생각을 열변을 통하여 자신의 뜻대로 움직여주기를 바라는 웅변과 자신의 생각을 감정을 쏟아내어 설명이 없더러도 상징적인 이미지를 전달하여 감동을 ㅜ는 낭순을, 웅변대회와 같이 놓고 시 낭송대회의 심사기준으로 구분없이 똑같이 시행하는 누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웅변은 서론, 본론, 결론, 부분을 통하여 하고자 하는 뼈?단계적으로 표현하여 많은 사람들의 군중심리를 이용하여 호응을 얻는데 그 목적을 두지만, 시낭송은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사건이나 사물에서 우러나는 맛을 음미하여 정서적으로 안정시키거나 윤택해지는 데 목적을 갖고 있다.
그러나 감상하는 사람들의 정신적인 움직임을 끌어낼 수 잇다는 가능성에 대해여 아무도 웅변성에 대해여 부정할 수 없는 사실로 나타난다.
5. 낭송의 동화성
시 낭송은 감상하는 사람들의 시선과 주위를 집중하지 않으면 안된다. 어수선하고 산만한 상태에서는 아무리 좋은 시 낭송을 한다 하더라도 소용이 없다. 웅변이나 동화 구연보다도 집중이 요구된다. 낱말하나라도 듣지못하면 의미를 ?쳐 알아들을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동화구연과 시낭송은 그 표현이 말하고자 하는 작가나 시인의 의도에 얼마나 가까이 접근할 수 있도록 몰고 가느냐는 성격과 과정이 같다고 볼 수 잇다.
동화구연은 어린 아이들을 주로 대상으로 삼기 때문에 주의 집중에 온잦 신경을 다써야 내용을 잘 알아듣고 상상하여 이해할 수 있다. 그러면서 작가에 의해 설정되어진 사건이나 사람의 움직임이 담긴 줄거리를 전달시켜 주어야 한다.
시 낭송은 감상을 하면서도 한 행 한 행을 들어면서 상상력을 동원하는 역활에 큰 도움을 주어 이미지의 흐름을 원만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 시 낭송은 내용에 맞는 손짓이나 얼굴의 시선을 통해서 오히려 자연스러운 의도를 전달하는 효과를 얻는다.
그러나 시 낭송은 낭송을 들어면서 많은 시간이 가지 않아도 감상하는 사람 나름대로 느낄 수 잇다는 자유로움을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시를 쓴 시인의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의미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시 낭송과 동화구연은 듣는 사람이 알아듣고 매듭을 짓는 부분에서 차이를 가져오고 있는 것이다. 시낭송은 시인이 하고자하는 의도를 듣는 사람이 이해하고 느끼는 방향이 다를 수도 있지만, 동화구연은 작가의 의도가 담긴 줄거리에 변화를 주지 않고 그대로를 전달하여 이해하는데 그 묵적이 있기 때문이다.
6. 낭송의 회화성
시 낭송을 들으면서 상상을 통하여 어떤 대상을 마음속에 그리면서 하나의 풍경화를 그린다. 다시 이어지는 내용이 다른 그림으로 그려져, 먼저 그림에 중첩되어지면서 보다 더 구체적인 이해가 오면서 이미지로 변환되어 내면의 의식세계를 파고 들어와 흐르는 물처럼 용해되는 것이다.
시 낭송은 듣는 사람들이 마음 속에 그려지는 그림이 도화지의 아래에서 위로 그려지든 위에서 아래로 그려지든 자유속에서 이루어지는 감상의 작업과정이다.
또한 색깔을 밝게 칠을 하든 어둡게 칠을 하든 아무도 상관할 수 없는 것이다. 시는 상징성을 띄고 있는 언ㄴ어를 듣는 사람들이 일일이 설명을 듣지 않고 시인이 표현하는 내용을 듣고 나름대로 느끼는 작업이기 때문에, 주가 되는 이미지에는 공통적인 이해가 된다 하더라도 부분적인 이미지에는 다른 방향으로 이해되어 손상을 가져올 수도 있다.
시 낭송은 낭송을 들어면서 감상을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정신적으로
집중이 되어, 그에 따라, 이미지의 손상을 줄일 수 잇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시 낭송은 한 폭의 그림을 그려나가 듯 정성을 다하여 호흡을 가다듬어 음성을 통하여 가슴 속에 심어 주어야 한다.
시낭송 문학의 실제(2) -시낭송과 언어표현-
1. 시
시는 시인의 사회생활을 통하여 얻어지는 지식과 체험을 바탕으로 느껴지는 생각을 문자로 표현한 것을 말한다. 시는 시를 쓰는 시인이 생각이 떠올랐다고 해서 즉석에서 단숨에 쓰여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여러 번에 걸쳐 완성에 가까운 표현을 하고자 노력한 결실이다.
산문처럼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서술적으로 털어놓고 겉으로 다드러내는 것이 아니어서 봉일 듯 말 듯한 표현 방법으로 수수께끼를 하는 ?처럼 감추어 놓고 있다.
그체적인 설명이 없이도 가슴에 심어져 공감을 얻고 그 공감을 바탕으로 감동을 이끌어내여 내면의 의식세계에 교감을 얻게 하는 것이다. 물론 보는 각도가 남과 같이 평벙하고 이미 사용한 방법을 되풀이한다면 이미 창작으로써의 가치를 평가받기는 힘든 것이다.
자신만이 갖는 못소히를 낼 수 있도록 노력했다면 자신의 시세계를 개척하는데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많이 생각하고, 많이 일고, 많이 쓰는 노력이 쌓여 비로소 시인으로서 사명을 다할 수 있는 기반이 다져질 것이다.
2. 시낭송
시인이 자신의 시를 묶어서 낸 책을 우리는 시집이라 부른다. 시를 읽는 돋자들은 시를 읽으면서 나름대로 공감하고 나름대로 감동을 얻는다. 때에 따라서는 시가 독자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방향에서 공감 아닌 공간을 끌어안고 감동 아닌 감동에 취할 수 잇기 때문에 시집을 내는 일로써만 시인의 역활을 다했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다.
가수가 가사만 알려주고 노래를 불러주지 않앗다고 가정하면, 가수의 역활을 햇다고 말 할 수 없는 것처럼, 시인이 시집을 발간하고 팔리기만을 바라다가 팔리지 않는다고 모두 회수해버리는 정도로 마무리 한다면 시인의 역활을 다햇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시인이 마든 시집 속에 활자로 누워있는 시들은 살아있는 시가 아니다. 시는 시라는 악보를 보고 돋자들 앞에서 낭송이라는 노래를 불러줌으로써 생명을 얻고 비로소 태어나는 것이다.
시인은 자신이 만든 시를 전파하는 시의 전도사가 되어야한다. 전도사는 자신의 생각을 총동원하여 자신감을 갖고 상대방을 끌얻 ㄹ이는 역활을 한다. 자신이 쓴 시를 낭송하면서도 원고를 보고 낭송하는 것을 많이 보고 있는 실정이다.
완전하게 외워서 낭송을 하면 자신이 시를 통해서 할 수 있는 말을 독자에게 전하듯이 감정을 정확하게 담아 표현할 수 있어 효과가 좋다. 주부들의 시낭송대회를 보면 시인들의 시 낭송보다 오히려 더 좋은 반응을 보이는 것은 암송을 하고 잇어 표현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3. 시와 시낭송의 관계
시란 본래 언어를 통한 생각의 표현이다. 단지 문자라는 매체를 통하여
종이 위에 표현을 빌렸을 뿐이다. 노래하는 시를 쓰던 그 시절에는 시를 읊었다는 시 낭송이 먼저 이루어졌어야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생각하는 시를 쓰고 있는 현실에서는 어쩔 수 없는 형편에 놓여 시를 먼저 쓰고 시 낭송을 나중에 해야만 하는 상황에 있다.
시는 단순한 대화의 형식을 갖고 있는 장르도 아니며, 생각나는 대로 두서없이 마구 내뱉는 장르도 아니다.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 중에서 가장 심사숙고를 하고 나서 표현해 보이는 장르이다. 모든 문학장르를 갈파한 문자사용의 진수를 보여줄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장르이다.
시를 쓰는 시인이 수필이나 소설을 쓸 수 있는 가능성보다는 수필가나 소설가의 경우 시를 쓸 수 있는 가능성이 다소 떨어진다고 볼 수 있는 형편이다. 문자는 읽을 수 잇으되 말을 할 수 없는 경우에 종이 위에 문자를 적어 의사 소통하는 것을 많이 보지만, 말을 할 수 있는 시인들이 문자로 시를 써서 독자들에게 시집을 전하여 의사소통을 하는 것은 어색한 모습이 아닐까 여겨진다.
물론 그 자체만으로도 복잡하고 바쁜 현실을 살면서 용이하지 않아 만족할 수 있겠으나 완전한 모습으로 보기에는 미흡하다. 시는 작품으로써 시 낭송을 통하여 생명력을 얻어 살아 움직여야 한다.
4. 언어 표현
시는 표현되는 시어는 별도로 만들어지지 않고 일상에서 사용되는 것을 그대로 사용하듯 시를 낭송하는 것 또한 우리의 생활에서 표현되는 언어를 떠나서 존재할 수 없다. 시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고 본다.
말을함축시켜 나타낸 것이 시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고 본다.
그렇다고 보통 말을 하듯이 대사를 엮어낸다면 그것은 시낭송이 아니라 연극의 연기를 한다고 본다. 낭송을 듣는 사람들이 잘 알아듣고 공감을 할 수 있는 시간의 여유를 두고 읽어야 한다.
알아듣지 못하고서는 낭송으로써의 생명을 얻지 못한다. 말을 하듯이 던져지는 구절들이 자연스럽게 리듬을 타고 이어지는 것이 낭송이다. 시의 주제에 따라 성격이 달라지기 때문에 사정하듯이 매달리는 어감으로 이어 지거나, 따지듯 하나 하나 짚고 넘어가는 어감으로 이어지거나 의연한 모습으로 맞서서 당당한 어감으로 이어나가는 형태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사람과 짐승이 다른 것은 생각을 말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낭송 역시 글자로 쓰여져 있는 것을 말로써 다시 표현하는 것이다. 애초에 말로써 했어야 할 표현을 글을 빌렸을 뿐 조금도 변화를 주었다고 볼 수 없다.
말로써 표현되어진 시를 읽는 낭송을 말이 아닌 다른 형태로 바꾸어 어색하게 꾸민다면 오히려 낭송을 하지 않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말로 표현하되 감정이 어린 말이어야 한다. 맺고 끊는 것이 분명한 의사를 언어를 통하여 표현하는 것이다.
다만 있는 그대로를 표현하지 않고 은유나 직유를 통하여 상징적인 이미지를 전달하는 목적달성을 위하여 보고 느낀 그대로를 창작되어진 언어로 표현한 것이다.
듣는 살들에게 시 낭송의 의미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요소는 낭송 주제와 내용이 시간과 장소의 분위기에 얼마나 물입할 수 있느냐에 따라 달려있다. 그러기 위한 감정 표현 듣는 사람들을 자신의 시에게로 끌어드링는 힘이 된다. 밋밋하게 듣는 사람과 낭송하는 삶괴 서로 떨어져 따로 노는 상황이라면 감동과는 거리가 먼 낭독이 되고 말 것이다.
언어의 표현은 기쁨과 슬픔을 자유자재로 조정할 수 있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반드시 슬프거나 기쁘지 않아도 그렇게 느낄 수 있는 표현 능력을 체험과 연습을 통하여 갖추어야 한다. 낭송연기는 연극배우나 탈랜트의 연기와 같은 차원에서, 낭송하는 사람의 감정은 시 속에 담겨있는 분위기에 오나전히 빠져들어 하나가 되어야 한다.
5. 시 낭송과 언어 표현
시 낭송은 시를 쓴 시인이 표현 의도를 좀더 가까이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방법이다. 시라는 장르가 시인의 생각을 문자를 통하여 언어를 표현 하였으니 문자를 다시 언어로 풀어주는 시 낭송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
시 낭송은 시를 읽는 것에 지나지 않지만 함축되어진 언어들이 시인의
음성을 통하여 독자들에게 전해지는 순간마다 들려오는 수많은 내용들로 가슴에 몰려와 안긴다. 그 자체를 일반 언어로 표현한다면 많은 양의 언어로 설명하여야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을 반복해서 입이 아프도록 몇 번이고 풀이해 주어야 한다.
그러나 시 낭송은 그러한 설명이 필요없이 그 많은 양의 언어가 뭉뚱거려 몇 개의 이미지로 앍혀지기 때문에 가슴에 스며들어 저절로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시 낭송은 일반 언어와 똑같은 형태를 갗추고 있으면서도 엄청나게 다른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정제되어진 시라는 악보를 보고 부르는 노래같은 시 낭송과 생각나는 대로 마구 표현되는 일반 언어와의 차이인 것이다.
사회 생활을 하면서 의사소통을 우너활하게 하기 위한 화술의 경우에도 말으 ㄹ많이 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의도를 분명히 밝힐 수 잇기를 요구하는 것도 함축성 있는 언어의 표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 이간사회에 통용되는 언어표현은 일반언어와 시에 사용되는 언어표현이절충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시 낭송과 언어표현은 서로 떼어 놓으려고 해도 떨어질 수 없는 상관관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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