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퍼 / 신정민
그의 턱 밑에 3센티미터 흉터가 있다
행운목 화분 모서리가 만들어준 그것은 항상 닫혀있다
넘어진 적 있다, 는 상징에서
그는 모든 것을 꺼낸다
하루 동안 처리해야 할 서류뭉치
주말에 다녀오기로 한 아이와의 동물원 약속
기린과 코끼리도 그곳에서 나온다
미처 다 꺼내지 못한 아내의 생일선물도
어지러운 책상의 물건들도
어느 날 갑자기 깨끗해진 그의 방은
그가 지저분한 모든 것들을 그곳에 집어넣었기 때문이다
옆자리 동료가 자신을 헐뜯었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에도
그가 꾹, 참을 수 있었던 것
불같은 마음을 집어넣고 스윽, 닫아버렸기 때문이다
밑 짧은 바지였다가
짤랑거리는 동전 지갑이었다가
모처럼 장만한 가죽 쟈켓이 되기도 하는 그를 통해
흉이 여러모로 쓸모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흉 없는 사람은 좀 수상했다
프로필
신정민: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꽃들이 딸꾹][뱀이 된 피아노]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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