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가을 소풍

湖月, 2010. 11. 22. 21:01

 

 

일어 반 가을 소풍날이다.

나이 든 어른들이지만 소풍이라는 단어가 주는 어휘만으로도 즐겁고

어릴 때 즐거웠던 그, 추억이 새로운 소풍날이다.

물론 김밥 싸고 먹을 것 잔뜩 챙긴 배낭은 아니지만 물 한 병과 손수건 장갑 한 켤레

등산모자 하나만으로도 설레는 것은, 숨 막힐 것 같은 도심을 벗어나 자연에

안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신나는 것이다.

수영강 상류인 두구교에서 새로 만든 수영강변을 걷는 길에는 맑은 햇살에 흔들리는

억새도 예쁘고 막 꽃이 시드는 들꽃의 애잔함도 발길을 머물게 하고 오른대

정수장으로 흐르는 작은 시내에 징검돌도 건너고 멀리서 백로가 한가롭게 먹이를 찾는

모습은 평화, 그 자체이다. 길을 걷다 보니 이제 막 심은 채소밭에 물을 뿌리는

스프링클러에서 작은 물방울이 햇살을 받아 무지개가 그려지고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작은 무지개가 침묵 속에 잠겨있던 내 영혼을 깨우는 듯

닫힌 문이 열리는 듯 상쾌하고 시원함이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그런데 채소밭을 바라보니 요즘 뉴스 시간에 자주 등장하는 배추 파동이 생각난다.

산지에서는 천 원짜리가 소비자에게는 만원이라니,

중간에서 사라진 금액이 좀 지나치다.

물론 인건비와 운송요금이 있겠지만 농민과 소비자만 골탕 먹는 것 같은 기분이다.

저렇게 작은 씨앗을 키우려 스프링클러를 작동시켜 놓고 잘 자라 달라,

바람과 햇살 날씨에 바치는 농민의 정성은 제값을 받지 못 할 때 얼마나 상심할까?

잠시 다른 생각을 하는 사이 동료는 저만큼 앞에 가고 있다.

정미영 선생님 가져온 보온병 커피와 삶은 밤으로 잠시 쉬고 다시 걸으며 삼삼오오

즐거운 발걸음이다. 선동 상현마을 상현집에는 꿩 샤부샤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꿩고기는 비위를 보하고 기가 생기게 하며 설사를 멈추게 한다.

꿩은 귀한 것이나 약간 독이 있으므로 늘 먹는 것은 적당하지 않고 음력 9-12월 사이에 먹으면

약간 보하지만, 다른 때 먹으면 치질이나 부스럼이 난다는 동의보감 기록을 보았다.

어떻든 시원한 국물맛과 부드러운 고기 맛은 괜찮다. 점심을 맛있게 먹고 있는데

우리 반 반장 (김동숙) 왈, 우리도 소풍 왔으니 보물찾기를 해야 한다며 빨리 나오라고

재촉을 하는데 입담 좋은 반장의 허풍이 방안을 흔든다. 1등은 비행기 1대

2등은 리무진 1대라며 빨리 찾아 보란다.


반장의 성화에 밖으로 나왔지만 보물이 들어있는 종이쪽지가 어디에 있을지

짐작도 안 되는데

여기저기서 찾았다고 소리치며 좋아한다. 난 도무지 좋이 쪽지 하나 발견 못 했다.

결국, 두 개 찾은 신상인 친구한테 하나 얻었다.

작은 선물이지만 한 사람 받을 때마다 궁금해 하고 손뼉치고 환호하고

모두 즐거운 한 때를 동심으로 돌아 갈 수 있게 한 배려가 고맙다.

즐거운 점심시간을 보내고 우리는 다시 걷기로 했다.


바쁜 사람은 먼저 돌아가고 남은 몇 사람은 수원지 둘레 길, 완주를 했다.

식수인 수원지 물은 맑고 깨끗할 것이라는 상식을 깨고 초록 물감을 풀어놓은 것 같다.

바다의 적조 현상과 같은 호수의 녹조현상도 독소가 있어 물고기나 동물도 해롭다는데

이 물은 부산시민의 식수라는 걸 생각하니 조금 전 즐겁던 기분이 싹 가신다.

녹조현상은 생태계 파괴는 물론이고 인체에 해롭다는 걸 모를 이 없지만

모두 오염된 물을 방류하는 탓이라는 생각에 시민 의식이 의심스럽다.

오른대 둘레 길은 호수를 끼고 있어 경치는 아름답고 멋진데

물도 맑은 물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20101101湖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