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압기
전건호
주렁주렁 매달린 식구들 부양하다
몸살을 앓던 그녀가
뇌출혈로 쓰려졌다
거미줄 같이 매달린
아파트 공장이 순식간에 절망에 휩싸였다
파르르 떨던 가로등이 나가고
밥솥이 끓다 말고
청국장 식어버렸다
집집마다 터지던 웃음꽃 멈춰 버렸다
사람들 그제서야 그녀에게 몰려들었다
그녀의 상태는 심각했다
검은 피 흥건하게 흘리는 그녀를 위해
비상등 켠 구급차 달려와
심장을 수술하는 동안
집집마다 촛불이 켜졌다
무관심하던 사람들까지
소생을 빌며 간절히 기도했다
누가 저 지경이 되게 방치했냐고
서로를 탓하며 분개했다
그녀 간신히 소생하자
이내 까맣게 잊어버렸다
그녀가 관심을 받아본 건
그날 그 순간 뿐
오늘도 상처 난 몸으로
허공에 매달려 신음하는데
쳐다보는 사람 없다
담쟁이
전건호
담쟁이와 눈 마주쳤다
창문 틈 들이닥칠 기세다
금이 간 벽 통째로 감아 돌며 올라와
창문 들여 보며 손짓을 한다
꺾이고 휘어진 줄기를 따라 내려가자
그가 뿌리내린 비좁은 틈이 열린다
아. 나를 만나기 위해
콘크리트 틈 뿌리내리고
백년을 기어 올랐구나
내가 이 집 눕기 전부터
어지러운 바람을 타고 떠도는
내 영혼의 착륙지점
이 방이란 걸 알았던 걸까
내가 누워 잠드는 순간을 향해
백년간 기어올라
아둔하게 걸어 잠근 방안
애타게 들여 보다
후득후득 바람에 몸 부딪쳐 창문 두드린다
빼꼼 내다보는 나를 향해
파란 손 가늘게 떤다
―『열린시학』 2009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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