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의香氣

드라이 플라워외2편 ㅡ 문인수

湖月, 2009. 6. 19. 07:30

 

 

드라이플라워 / 문인수

 

마음 옮긴 애인은 빛깔만 남긴다
말린 장미·안개꽃 한 바구니가 전화기 옆에
놓여 있다. 오래,
기별 없다. 너는 이제 내게 젖지 않아서
손 뻗어 건드리면 버스러지는 허물, 먼지 같은 시간들.
가고 없는 향기가 자욱하게 눈앞을 가릴 때
찔린다. 이 뽀족한 가시는
딱딱하게 굳은 독한 상처이거나 먼 길 소실점,
그 끝이어서 문득, 문득 찔린다.
이것이 너 떠난 발자국 소리이다

 

 

 

빗소리 모아 듣다 / 문인수

 

아무도 안 오고 저, 빗소리 모아 듣다.
커다란 목련 나무에 이제 여나문 개째 꽃망울 툭, 터지는가
운문사 내원암 이 사발 속 같은 골짜기,
산빛 흐릿흐릿 잠긴다.
대숲 또한 묵직하게 시꺼멓게 잠긴다.
두루 다 잠가놓고
끙, 절 들어가 앉는 거 느껴진다.
저 목련, 한꺼번에 폭발적으로 핀다고?
아니다, 자꾸 흰 돌멩이 하나 올려놓듯 등 달 듯 그렇게
몇억 겁게 한 송이씩 꽃피는 것 같은 봄날,
나도 저 빗소리 모아 오래 탑 쌓고 있다.

 

 

 

비닐봉지 / 문인수

 

차들이 비닐봉지 하나를 연신 치고

달아난다. 비닐봉지는 힘없이 떳다 가라앉다 하면서

찢어질듯 커다란 아가리를 벌리지만 도통

소리가 없다. 연속으로 들이닥치는 무서운 속력 앞에, 뒤에, 두둥실

웬 허공이 저리 너그러운지.

 

누군가의 발목에서 떨어져 나온 그림자, 그늘인 것 같다. 과거지사는 더이상 다치지 않는다. 이제

적의 멱살도 박치기도 없는 춤, 검은 비닐봉지 하나가 또 잔뜩

바람을 삼킨다. 대단한 소화능력이다. 시장통,

거리의 밥통이다. 금세 홀쭉하다.

 

 -시집 『배꼽』2008. 창비

 

 

 

프로필

 

1945년 경북 상주출생

1985년<심상>등단

시집『뿔』『홰치는 산』『동강의 높은 새』『쉬 』『배꼽』등

제14회 대구문학상, 김달진문학상, 노작문학상을 수상했다.

insu398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