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江(詩集)

비 내리는 강 제2부

湖月, 2014. 7. 10. 16:03

 

제2부 / 바다의 눈물

바람은 알까

 

 

3호선 전철은 신사동을 지나고 있었어

그때 팝송 한 자락, 무심한 사람들을 헤집고

절룩이며 걸어왔지

신사 숙녀들의 가슴을 파고드는 노랫가락

다리에 쥐가 난 무희舞姬 같았어

통로를 더듬는 그의 발끝은 조심스러웠지

목에 걸린 트랜지스터에서

밥 딜런Bob Dylan의 바람만이 알고 있지가

애절하게 밥 밥을 찾고 있는데

그의 입은 놀란 조가비처럼 닫혀 있었어

아무도 지갑을 열거나

지폐를 꺼내는 사람은 없고

모노드라마를 보듯,

그의

조심스러운 발끝만 보고 있었지

어둠을 밟아가는 그의 발끝

풍문처럼 떠도는 바람을 따라

비루하지 않은 걸음으로

허기진 빛을 찾아

암호 같은 점자를 느리게 더듬어 갔어

 

 

간절곶에는 간절한 기도가 있다

 

 

해맞이 가고 싶은 동해안 땅끝

해야 해야 솟아라

무작정 돌팔매질하듯 어둑한 바다를 향해

말없이 바다를 가르다 보면

불덩이 그대로 눈이 부신 태양이 솟는다

바다는 삼신할미처럼 천천히 밀어 올리고

하늘은 산바라지 포대기처럼 해를 받는다

먼 길 멀다 하지 않고 달려온 사람들의 환호

두 손 모아 합장하게 하고

수평선을 딛고 하늘로 하늘로 솟아오르는 해

눈이 부신 태양은 천천히 하얘지고

간짓대 끝에 앉은 새처럼 아슬아슬한 사람들

합장한 기도는 설레는 해조음으로 바다에서 운다

깊어서 푸른 바다 하늘이 내려와 잠재우려면

심심한 바닷바람 슬쩍 흔들어 심술부리고

바다는 성가시다는 듯 차르르 철썩 물결을 접었다. 피고

그럴 때마다 바다는 아프다 아프다 목 놓아 운다

그 옛날 박재상 부인과 두 딸이 여기 간절곶에서

간절한 기도가 파도가 되어 아직도 울고 있나 보다

 

바다만 바라보다 망부석이 된 지어미는

세월을 묶어 끝없는 수평선에 걸어두고 아직도 바라보며

지아비 그리는 정 몇백 년 흘러도 그대로네

오늘도 망부석상에 매달린 기도는 간절한 바람이어라

 

 

 

비 내리는 강

 

 

비가 내리면

강물은 그냥 흐르는 게 아니라네

촉촉한 비를 맞으며 도란도란 속삭이고

작은 동그라미 그리며 노래를 하지

밤 깊도록 비가 내리면

불어나는 강물을 걱정하며

밤길을 걷던 모녀처럼

그렇게 정답게 흘러서 가네

 

 

내 어머니 강물처럼 흘러갔어도

내 마음에 새겨진 정 아직 그대로 있네

혼자 걸어도 촉촉이 젖어 오는 정

비가 되어 내 마음에 흘러내리네

아파도 서러워도 끈끈한 그 정 못 잊어

비 내리는 강가를 서성이면

어느새 내 눈에 고이는 눈물

강물 같은 내 마음 비가 되어 흐르네

 

 

밤에 우는 태양

 

 

허리에 질끈 동여맨 전대가 어설픈 중년 남자

확성기를 들고 머뭇거린다.

일 톤 트럭에 실린 신토불이 채소가 주인의 눈치를 본다

달동네 좁은 골목길에서 신토불이가 시들어간다

 

 

한 소쿠리 삼천 원 두 소쿠리 오천 원

감자 고구마 오이 당근 신토불이요

겨우 기어 나온 중년 남자 목소리, 차바퀴에서 맴돌 뿐

통통 튀어 나가지 못한다

확성기 소리 비실비실 열릴 듯 닫힌 쪽문을 넘보지만

쪽문은 성벽처럼 높고 장승처럼 꼼짝 않는다

간절한 목소리 허공을 맴돌다 주르륵

별처럼 사내 가슴에 떨어진다

내로라 큰소리 탕탕 치던 중소기업 사장님

발가벗겨진 피사체 되어 거리에 서 있다

부나비 같은 신세, 바람 따라 떠나고 싶어도

해바라기처럼 자기만 바라보는 식구가 있다

티눈처럼 아픈 세 식구를 생각하며

한낮에 비워낸 빈 소쿠리에 젖은 한숨 담으며

밤에 우는 저 남자

 

 

호박소

 

 

밀양 백운산자락 골짜기 하얀 화강암

떨어지는 물줄기 공손히 받다가

커다란 절구 하나 생겨났다는데

밤별처럼 쏟아지는 물소리 폭포가 되고

바다를 그리워하는 물의 행렬

바람을 일으켜 세우며 걷는 보폭이 장렬하다

 

 

몇 억겁의 세월

깊은 골 정적을 깨우는 폭포는 지치지 않고

늙거나 병들지 않고 아직 푸른 기상 그대로

변함없이 설익은 고백으로, 하얀 물살 접으며

휘어진 계곡 모퉁이 돌아가는데

마치 전설 속 이무기라도 나올듯한 물보라

 

 

호박소를 둘러선 단풍나무

근위병처럼 근엄하게 늪을 지키고

물소리 바람 소리 아득한 전설처럼 흔들리는

은유에 화답하는 폭포는 물의 음계다

벼랑 아래 떨어진 물의 발자국은

물의 예절이다. 바로 시례詩禮다.

 

 

열대야

 

 

익을 대로 익은 여름이 기어이

한증막 한 채 지었다

온종일 지표를 달군 태양도

지쳐서 잠이 든 밤

온통 휘감기는 끈적한 열기

절절 끓는 한증막 속으로

나를 사정없이 밀어 넣고

헉헉대는 삼라만상

온종일 시달리던 선풍기도 절룩거리고

열기를 이기지 못한 TV도 횡설수설

여름의 여왕 죽부인마저 맥없이 누웠다

며칠을 신열로 앓아누운 대지가, 훅

내 뿜는 뜨거운 바람이

한증막으로 도시 전체를 밀어 넣는다

 

 

난설헌蘭 雪 軒에게

 

 

선계仙界를 그리며

갓 핀 부용처럼, 수련처럼,

애잔하게 피었다가

짧은 생을 애달게 울던 사람아

 

 

양유지사楊柳枝詞 흐르는 그대 거닐던 호반

눈썹 같은 버들잎 사이로

저고리 고름 풀리듯

대금 한 자락 휘감긴다

 

 

호반에 어둠으로 묻힌 그대의 시간

하나 둘 일어나 나를 흔들고

호수를 흔들어도

선계의 도량 읽어내는 재주 없어

서럽기만 하여라

 

 

채련곡採蓮曲에서 연꽃 따 던져놓고

반나절 부끄럽다 하더니

이제는 애타는 그리움 없고

 

부용 꽃 떨어지는 애절한 사연 같은 일 없을 터

(그래서)

나도 그대 계신 선계를 그리워하네

 

 

고해苦海

산다는 것은

참으로 나를 아프게 한다

파랗게 날이 선 비수는

언제나 내 심장을 겨누고

협박과 위협을 일삼는다

 

오래전 메말라 버린 눈물이

새삼 상처를 건드려 자지러지는 아픔을

그대는 아는가

 

 

산다는 것은

나를 헐리고 비워내어 점점 가벼워지는 걸 알면서도

집착과 아집을 버리지 못하니

마음은 납덩이처럼 무겁고

어두운 밤바다처럼 두렵고 적막하지 않은가

 

 

처음부터 여태

바람의 음모를 짐작 못하고

손으로 잡을 수도 만질 수도 없는 뜬구름

가슴에 품은 죄 난장처럼 출렁인다

 

 

게발선인장

 

 

우리 집에 화려한 공작 한 마리 산다

목숨을 담보로 무성하게 자라나는 발

게 발 몇 개 잘라냈다고 죄가 될까 싶어

눈물은 못 본 척 게걸음으로

작별을 재촉해 동행했지만

살아있는 발을 잘랐으니 얼마나 아플까

낯설고 물 설은 타향 같은 은신처

작은 화분 하나 제공했지만

잘린 발로, 목발도 없이 혼자 일어서려

얼마나 힘들었을까

목마를 때 물 한 방울 준 일밖에 없는데

상처 난 발끝이 아물고 새살이 돋고

발끝마다 진분홍 꽃을 매달고 보란 듯이 웃는다

옮겨온 지 3년 차 발끝마다 꽃무늬로 단장하고

공작새처럼 화려하게 꼬리를 활짝 펴고

아늑한 거실에서 대관식을 꿈꾼다

 

 

감기

 

 

불꽃같은 신열이 어둠을 끌고 들어와

아무도 몰래 귀신 놀이라도 하잔다

비린내 나는 누런 이빨로

느슨해진 내 목덜미를 물고 좌우로 맴을 돈다

아득한 절벽에 매달린 발끝이 숨을 죽인다.

 

 

희미한 불빛 속에 물 흐르는 소리, 꿈속처럼 들리고

고수동굴처럼 서늘한 기운, 수억 년 잠들었던 물

온몸을 적시며 점점 차오르는데

좁은 골방이 출렁인다

사방 벽에서 붉은 꽃잎 우수수 떨어진다

 

 

허기진 짐승의 눈빛에 쫓기어 바르르 떨린다

흥건히 젖은 몸은 익숙한 길을 잃었고

뇌성 번개가 지나간 머리는 전류가 똬리를 틀었다

붉은 한 알의 몰약

고운 선혈 마시려고 실눈을 한다

 

 

가을이 오면

 

 

하늘이 높아지기 시작하면서

밤하늘 별빛도 더 멀어지는데

풀벌레 소리 점점 요란해지는 건

곧 겨울이 올 거라는 전령인가보다

 

 

소리 없이 내려온 은은한 달빛

내 창문을 들여다보면

나는 무슨 죄를 지은 것처럼

가슴 철렁 내려앉는다

머지않은 날 낙엽은 다 지고

빈방에 우두커니 나 혼자이면 어쩌나

 

 

가야 할 곳 찾기도 전에

나의 가을은 점점 깊어가고

창 너머 풍경 속 보이는 저 길이

흰 눈으로 하얗게 덮여버리면 어쩌나

성급한 두려움으로

초조해진 마음 빈방을 서성거린다

 

 

가을

 

 

팔월의 끝자락 길목에는

지친 여름이 느리게 가고 있다

허수아비 한여름 꿈

저만치 사라져 가는데

키 큰 수숫대 끝에

붉은 고추잠자리 앉을까 말까 망설인다

 

 

장난기 발동한 실바람 슬쩍 수숫대 흔들고

고추잠자리 무리를 지어 하늘 높이 날아갈 때

파도처럼 밀려오는 향수

 

 

어느덧 들국화 향기에 빠져버린 나

단풍 같은 노을 따라 가을이 되어간다

푸르른 젊음, 저만치 바람 따라 가버리고

빛바랜 치맛자락 펄럭이며

모퉁이 돌아가는 가을빛 내 모습 보인다

 

 

산문에 핀 꽃무릇

 

 

푸른 멍 자국 감추던

스란치마 벗어버리고

회색빛 법복도 송구하다는 듯

가느다란 꽃대 위에 맨몸으로

아슬아슬하게

한 송이 붉은 꽃으로 피어난 여인

꽃잎은 핏빛보다 진한 선홍으로

온산을 물들이고도

가슴에 맺힌 한 다 풀지 못한 듯

선운사 목탁소리에

제 몸, 주리를 틀고 서 있는 여인

속세의 인연 부질없다

애절한 전설 구구절절 꽃으로 피워내도

빗나간 사랑은 되돌릴 수 없어라

화엄경에 귀 열어 놓고

멀리 법당을 바라보는 꽃무릇이 된 이여

산문에 기대어 합장하며 우는 가련한 여인아

 

 

선운사 동백

 

 

고창 선운사 대웅전 뒤뜰에 동백꽃 필 때면

전국의 난다 긴다 하는 처사님 보살님들

관광버스 비좁도록 선운사에 모이는데

법당에 부처는 보는 둥 마는 둥

너른 마당을 가로질러 뒤뜰로 달려간다

춘동백 먼저 보겠다고 몰려드는

보살님 등쌀에

법당에 부처님 안절부절못한다

고 고운 꽃잎들 바람날까

가부좌 튼 무릎이

일어설까 앉을까 하루에도 몇 번을 들썩인다

 

 

대웅전 법당 뒤뜰에 핀 동백

부처가 떡 버티고 지키면 뭘 하나

예쁘다 예쁘다

저마다 비밀스러운 속내 감추고

애먼 동백꽃만 팔리고 있는데

 

 

 

대변항

 

 

어부들 부푼 소리 술렁이는 작은 포구

손 모아 올린 치성 돌아온 풍어소리

갯마을 작은 부둣가 은빛 고운 멸치 배

 

 

파드닥 튀는 멸치 싱싱해서 고와라

어기어 어기여차 신바람 어부 손길

대변항 후릿그물에 펄떡이는 생멸치

 

 

비린내 뱃전에는 생기가 넘쳐나고

그물을 터는 손 고단한 줄 모른다

밤새운 어부의 노래 햇살처럼 빛나네

 

 

부풀은 소망을 담아 포구 찾아 왔구나

마중 온 인정들이 훈훈해서 좋아라

사월의 눈부신 봄빛 덩달아서 고와라

 

 

전어

 

 

자갈치 축제마당 후끈 달아오른 분위기

왁자지껄 인파로 인산인해다

축제마당에 빼놓을 수 없는

걸쭉한 입담 각설이타령

북적이는 인파에 밀리며

겨우 한자리 차지한 사람들

시끄러운 축제

요란한 장사꾼 말 잔치가 화려하다

돈 돈 돈……

돈을 달고 다니는 전어는 불안하다

돈을 좋아하는 사람들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며 전어만 찾는다

어항 속 전어는 언제 잡혀 나갈까

장사꾼 눈치만 살피며

짠물에 풀어내는 슬픈 눈물이 있다

좁은 어항 속 지느러미 흔들며 요동칠 때마다

반짝이는 은빛 비늘 은전처럼 쌓인다

 

 

바다의 눈물

 

 

밀었다 밀려왔다

누굴 그리 애타게 찾는지

파도의 속삭임이 허물어지면서

푸른 울음이 주춤주춤 망설일 때

새롭게 살아나는 물결

하얗게 넘실대는 사유가

생명의 간이 되는 줄 몰랐다

한가로운 바람은 눈이 부신 햇살 안고

온종일 칭얼대는 물이랑을 달래면

바다의 눈물은 어느새 하얀 꽃으로 핀다

고무래로 밀었다 당겼다 풍랑을 달래던 염부

꽃으로 피어난 분신 같은 결정체를 안고

묵묵히 소리 없이 느낌표를 찍어 넣는다

적멸에든 바다야 세상에 나가서

부드럽게 절여주고 간을 맞추기도 하지만

썩어가는 세상을 만나거든 꼼짝 못하게 염해버려라

짭짤한 간이 되어라

땡볕과 해풍을 가슴으로 안고 꽃으로 피어난 바다

반짝 빛나는 마른 눈물 눈부시다

 

 

바람풍자를 아시나요

 

 

바람 부는 날에는 차를 마시고

비가 오는 날에는 술을 마시며

세상 이치 거스르지 않고 살아온 사람

바람풍자에 벌레충이 왜 들어 있는지 몰랐지

태풍이 지나간 제 몸을 보고서 놀란 사람

불혹을 겨우 넘긴 나이

뼈에든 바람과 싸우는 저 사내

아침마다 비탈진 등산로에서

힘없이 흔들거리는 왼쪽 팔을

오른손으로 붙잡고 바람풍자를 그리며

한 발짝 뗄 때마다 위태롭다

예고 없는 바람 앞에 무너진 사람

오늘도 바람을 잡고

바람풍을 아시나요

물음표를 던지며 바람풍자를 그리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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