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부
나만 못 가네
그리운 송도해변
바다 보러 추억 보러 가는 길 송도 해변
눈물 빛 진줏빛 몇 자락을 감고 돌아
맨발로 아리게 밟은 거북섬이 그대로다
가슴 팬 그리움도 차마 못 잊어
푸른 솔 송림공원 시처럼 그림처럼
백 년의 아픔을 삼킨 물안개 슴벅인다
시련의 역사를 품고 출렁이는 송도 앞바다
눈물 젖은 그 추억 애면글면 바람 되어
새물내 내 옷자락을 휘모리로 받는다
자갈치 아지매
화려한 빌딩 숲 사이를 들어서면 바다냄새 훅 스치고
(오이소 보이소 사이소) 부산 사투리, 싱싱하게 팔딱인다
갈매기도 따라 끼룩끼룩 사투리로 말 거는 자갈치는
자갈은 없고 좌판에 팔딱이는 바다가 있다
밀려드는 인파, 파도처럼 출렁이며
뱃고동소리 선창을 깨우는 설익은 아침
부두는 경매 값 부르는 소리에 금방 생기가 돌고
단박에 요동치는 장이 열린다
비릿한 해풍에 소금기 간간하게 밴 자갈치 아지매
평생 생선 배 가르는데 이력이 난 손
낭창거리는 칼날은 팔딱이는 바다를 잠재우고
아직도 짠물이 그리운 것들
휑하게 허기진 뱃속, 짭조름한 눈물 한 줌 넣어
지느러미 대신 장바구니에 실려 보낸다
이른 새벽부터 저녁 이슥하도록 잽싼 칼질에
등 푸른 바다, 하나 둘 좌판을 떠나고
썰물같이 빠져나간 바다가 앉았던 자리
식솔들의 웃는 얼굴, 꽃처럼 피어날 때
산처럼 무겁던 몸 귀갓길이 가뿐하다
송도 암남공원
바다와 맞닿은 거기는 아찔한 땅끝
초여름 실록에 어우러진 바다내음
하늘도 바다도 함께 전설 같은 안개 속
솔향기 그윽한 공원에 푸른 숲은
청풍이 끌어온 출렁이는 파도소리
그리움 고인 자리에 바다가 먼저 와 있다
나선형 층층다리 굽이굽이 내려오면
쪽배에 돛을 올리고 떠나고 싶은 수평선
저 멀리 선홍빛 노을 서사시로 저문다
몽돌이 되기까지
억 만년 긴 세월
깨어진 바윗돌 말없이 도를 닦는다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
몽돌을 흔들며 보채고 유혹해도
좌르르 좌르르 제 살 깎으며
천 년을 하루처럼 세운 뜻 그대로
둥글고 모나지 않게 살겠다는 다짐
침묵으로 선 관음처럼 눈부시다
깨어지는 아픔을 인내한 세월
하늘도 바다도 이미 알고 있지
닳고 닳은 몽돌이 되어서도
쉬지 않고 정진하며
몸과 마음을 갈고 닦는 저 신념
참선하는 마음 그대로
천만 년 닦은 도량 반들반들 윤이 난다
나비처럼 가볍게
산다는 것은 기다림이다
반송 우표를 달고
아름다운 세상으로 유배된
외로운 방랑자 같은걸
생의 고단함을 베고 누워보면 안다
야금야금 날마다 먹어치우는
세월의 왕성한 식욕 앞에
생은 날마다 야위어간다
점점 가벼워지는 생
그저 초라한 나그네일 뿐
하늘나라에 걸쳐놓은 명줄에
목매지 말자
무지개처럼 허무하다, 서러워 말고
민들레 꽃씨처럼 미지의 꿈을 찾아
가볍게 날아오를 준비를 하자
일평생 쌓인 죄(욕심)
날마다 조금씩 덜어내면
비운만큼 가벼워지겠지
왔던 길 되돌아가는 날
생을 살짝 내려놓고
나비처럼 살포시 날아가리라
감을 말리면서
너를 만나려고 일 년을 기다렸느니
감꽃이 필 때부터 마음 졸이다
꽃 진자리 작은 열매 매달리면
매일 기도하는 마음으로
바람과 햇볕에 당부하고 부탁하고
상할세라 덧날세라 애지중지 키운 너
누군가의 입을 행복하게 해 줄 거라는 믿음으로
정성 들여 깎고 말리며 행복해지는 마음
마른 허공에 풍경처럼 걸어놓으면
남몰래 달콤해지는 찰진 맛
풍미를 아는 가을바람은
햇볕을 불러들여 비밀스러운 모의를 하고
햇볕과 바람의 입술이 지나간 자리
사랑으로 익은 너의 속은 촉촉하고 쫀득한 맛
부끄러운 듯 홍조를 띤 너의 볼은 윤이 난다
물폭탄 지나간 자리
억수 같은 장맛비는 기어이
사나운 짐승이 되어
수박밭도 감자밭도 사정없이 먹어치운다
갈수록 커가는 도랑물은 헐크가 되어
아기가 건너가던 다리도 무너트리고
까치집 같은 순영네 집까지 끌고 간다
햇살이 반짝이는 싱그런 초원 위에
노란 꽃신, 아기 신발 한 짝, 꽃처럼 피어
아아 앙~ 아기 울음소리
물기 젖은 채 풀밭에서 굴러다닌다
넋이 나간 아기엄마
칭얼대는 꽃신을 가슴에 품고
자장가 부르는 바람을 따라
너울너울 춤추는 그녀의 치맛자락에
햇살이 나비처럼 모여든다
배추 죽이기
아! 살겠다
금방 버무린 김치 한입에
그녀는 변명처럼 입맛을 다신다
음양의 조화를 안다는 듯
무 배추 푸르게 땅심을 자랑하는데
요절낼 속내를 감춘 그녀
요리조리 살피는 척 알찬 놈 골라
단번에 쓰러트리고
조자룡 창도 검도 아닌 부엌칼
열십자로 휘둘러 조각을 낸다
무엇이 그녀를 부추기는지
피도 못 흘리고 아파하는 늑골에 굵은 소금
사정없이 뿌리고 물고문을 시작한다.
기절해 축 늘어진 그에게 뿌린 화끈한 고춧가루에
자백도 못 하고 숨을 거두니
영하의 냉장실에 안치를 시켜놓고
드디어 완전무장 해제를 하는 그녀
김장을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
아이고, 죽겠다는 소리 수백 번
그를 다섯 번 죽여 놓고
이제는 살겠다, 한다
나만 못 가네
이념의 벽처럼 아득히 높은
통일 전망대
계단이 나풀나풀 내려와
내 발아래 엎드려 있는데
더는 못 가네
철조망 건너 저쪽
동해를 휘돌아 달리는 철로선
원산 가는 국도를 따라
바람은 잘도 가는데
나만 못 가네
휴전선 가까이 푸른 동해는
남과 북이 얼싸안고 돌며
철썩철썩 노래도 부르네
금단의 땅을 넘나드는 작은 산새도 바닷새도
자유롭게 서로 만나서
지지재재 소식 주고받는데
나만 못 가네
나도 시린 아픔일랑 동해에 풀어놓고
하얀 웃음 날리며
임 만나러 갈라네
퍼렇게 멍든 속내는 감추고
그냥 꽃처럼 웃어 줄라네
비둘기의 입몰入沒
해 질 녘 발소리 죽이고 산 아래로 내려오는 어둠
조붓한 산길 모퉁이 작은 새들 어둠에 쫓기어
일제히 나뭇잎 사이로 파고든다
기쁜 소식 급히 전하려다 어둠에 이마를 받혔는지
산비둘기 한 마리
회전하는 바람과 공중전을 하고 그대로 떨어진다
날지도 못하고 창백한 몸짓으로
잦아드는 가녀린 움직임
봄이 오기 전, 떠나버린 짝을 원망함인가
따뜻한 가슴을 기억해 두려 함인가
천천히 감기는 슬픈 동공
허공처럼 가볍게 누워 어둠처럼 적막하다
저무는 저녁놀이 실루엣처럼 황홀한데
점점 어둠의 빛깔로 변해가는 죽음
푸른 소식 전하려 하늘을 나는 꿈을 꾸는지
날아오를 듯 꺾인 날개가 움찔한다.
아직도 전하지 못한 메시지 남아 있는지
가녀린 날개 가늘게 떨고 있다
장다리 밭에서
하늘하늘 아슬아슬 나비가 나네
장다리꽃잎 같은 노랑 날개 흔드네
평생 한 벌 뿐인 날개옷
고운 장다리꽃 꽃물 들여 입고
행여나 비에 젖을까
바람결에 상할까 애태우며
장다리꽃밭에 숨어드네
노란 꽃잎에 입 맞추고
꽃잎과 날개가 한 몸이 되는 나비
꽃잎 스치는 바람에 날개를 맡기고
그냥 자유로운 저 날갯짓
나비처럼 가벼운 넋이 되어
나비처럼 욕심 없이
나비처럼 자유롭게
나비처럼 아름답게
장다리꽃밭에 나비가 되고 싶네
생명
윤 산 등산로 갓길 연둣빛 푸른 잎
우거진 덤불 말끔히 이발하듯 베어낸 자리
숲 가꾸기 예취기의 소음에 새끼를 두고
숨어버린 어미 새 가슴, 저만치 산딸기가 붉다
종지처럼 작은 새 둥지에 새알 하나
은신처 들켜버려 겁먹은 새알
숨 막히는 공포감 옴짝달싹 못하고 있다
문서 한 장 없는 저 새 둥지 누가 지켜줄까
놀라고 기막힐 저 작은 생명
얼러주고 달래줄 숲 함부로 건드리지 마라
쿵 내려앉은 새 가슴 생각해보자
아직 깨지 않은 알 속에서 숨죽이고 있는
작은 숨소리 들어보자
미끼
짐작도 못 할 깊은 바다, 남해
겁도 없이 뛰어내린 미끼 하나
작은 파문도 잠시
물밑을 기며 해찰하듯 딴청을 핀다
바다는 저리도 태연한데
물밑에서 보내는 헛발질에도
낚시꾼은 철렁 가슴 졸인다
손끝에 초조함을 낚싯줄에 묶어
바다를 당기면 깊은 물소리 따라나온다
남을 꾀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인가
작은 미끼로 일렁일렁 흔들며
어린것을 유혹하다가
바다에서 잡혀온 놈 슬쩍 엿보는데
잡혀온 제 신세도 잊은 듯
누구를 유혹하려 그러나
은빛 꼬리 살랑살랑 흔드네.
산성 북문을 내려오면서
금정산성 북문을 지나오면
목 놓아 울어대는 솟대를 만난다
나뭇가지 높이 올라 소리 없이 우는 저 나무새
아픈 사연이 발길마다 채이고
그 울음이 한을 풀지 못해 바윗돌 되었나
긴 세월 얼마나 피멍을 토했기에
깊은 산골 이토록 바위산을 이뤘을까
골짜기를 흐르는 계곡 물소리
서리서리 서러운 솟대의 설움인가
소리 내지 못하는 나무새의 소망이
맑은 옥수가 되어 내川를 이루고
굽이굽이 전설처럼 흘러가는가
은은히 들려오는 범어사의 독경소리
애달고 서러운 내 마음 솟대를 위로함인가
물소리 바람 소리 하도 서러워
내 생의 아픔 하나 내려놓고 가려 하네
금샘金井
전설의 새암을 찾아갔네
오색구름을 타고 내려와
범어梵魚가 놀았다는 새암
석 달 열흘 가문 날에도
마르지 않는다는 새암
금정산 동쪽으로 화강암 봉우리
세길 높이 바위에 돌우물 하나
금빛 물고기는 보이지 않고
하늘의 구름이 내려와 담겨있네
아~ 신비의 금샘
천기를 누설하지 말라고
지나가는 바람이 속삭이네
말씀에 피는 가시를 아시나요
꽃 같은 말씀이 한바탕 쏟아지면
목마르던 사랑은 샘물처럼 달콤해라
사랑의 덫에 걸려든 달아오른 불나방
한바탕 화려한 장미의 축제처럼
감쪽같이 숨겨둔 가시를 보지 못하고
온몸이 붉게 물들어 찔리는 줄 몰랐다
바늘 같은 그대의 말 내 가슴에 숨기고
조금만 움직여도 콕콕 심장을 찌르네
가시를 통과해 온 나 치명상을 얻었다
입안에 가시가 사는 걸 아시나요
말씀에 피어나는 가시를 아시나요
당신이 한 말 속에는 묵시의 가시 없나요
늦기 전에
추억처럼 솔솔 풀리는 무명실로
당신의 소갈딱지 같은
엄지손가락을 칭칭 동여매고
손가락 끝에 갇힌 독毒오른 혈을
바늘로 콕 찌르니 나의 욕심 같은
붉은 선혈이 놀란 방울꽃처럼 피어난다
꽉 막혔던 명치끝의 체증이 슬그머니 내려간다
명치끝에 막혔던 체증을 내리듯
당신과 나의 막힌 정을 소낙비처럼
단 한방에 찔러 내리고 싶다
먼 추억 같은 피돌기를 갈망하는 이 몸
맺힌 혈을 찾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하는 사이
생의 밑동이 점점 하얗게 시들어 가는 시간
이쪽저쪽으로 비켜선 채
한나절 같은 생이 저물고 있다
새벽 버스를 기다리며
새벽 첫 버스를 기다리며 습관적으로
휴대전화를 열고 시간을 확인한다
5시 20분, 어둠은 동굴 속처럼 축축하다
구름다리 위에 흔들리는 불빛은 자폐아처럼
나를 보고 헛발질이다
이른 새벽 적막한 대로변에서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는 일처럼 초조한 일 있을까
고양이 눈빛처럼 반짝이며 다가오는 불빛
내가 기다리는 버스이길 간절히 바라며
나는 버스표를 챙기고 동동거린다
내 기다림은 비바체로 어둠을 흔들어도
기다리는 버스는 오지 않고 시간은 흐르고
초조함은 외로움으로 쓸쓸해지고
모든 세상이 나를 버린 것 같이 고독해져도
그래도 나는 약속을 믿는다
언제나 그는 내가 흙발로 밟아도 성내지 않고
체크카드 하나 내밀면 감사합니다
상냥하게 나를 반겨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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