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과 환장 사이 화장과 환장 사이 꿈에도 그리운 피붙이 칠성판에 가지런히 뉘어 놓고 고운 삼베 한 필 끊어 수의 대신 입혀드리고 화장化粧대신 고운 한지로 단장을 시켜드리고 영락공원 화장장에 들여보내려니 환장하겠네 불꽃도 보이지 않는 천도의 열기 화덕 안에 있는 널 밖에 있는 난 생각만으로.. 빈잔의 자유(詩集) 2018.10.13
해우소解憂所 해우소解憂所 보덕사 절간에서 만난 해우소 백 살이 넘어 뼈대가 앙상하다 늙은 제 한 몸 지키기도 어려울 텐데 사소한 이별도 큰 근심도 다 해결해주느라 긍긍전전 전전긍긍이다 표정 없이 앉아 있는 것 같아도 이녁도 구린내 지린내 고역이란 걸 알겠다 천장도 떼버리고 문짝도 활짝 .. 빈잔의 자유(詩集) 2018.10.13
명궁을 꿈꾸며 명궁을 꿈꾸며 나는 詩의 홍심을 찾고 있다. 명궁을 꿈꾸며 은유의 대상까지 추리하고 상상하고 나는 날마다 붉은 심장을 조준하며 산다 내 마음은 늘 홍심紅心이다 붉은 내 마음을 관통시킬 너를 만나고 싶다 마음은 언제나 명궁이다 詩의 과녁 앞에 서면 시위를 당기기도 전에 과녁의 .. 빈잔의 자유(詩集) 2018.10.13
미역귀는 이명을 앓고 있다 미역귀는 이명을 앓고 있다 기장 앞 바닷가 난전에 나온 미역 귀를 기울이고 미세한 감각을 더듬는다 출렁이던 물살도 장난스러운 작은 물고기도 꿈처럼 사라지고 낯선 바람이 분다 어르신 진짓상에 오르기 위해 한줄기 해초로 살아남기 위해 작은 귀로 듣고 온몸으로 견딘 고달픈 울.. 빈잔의 자유(詩集) 2018.10.13
잡초의 서러움 잡초의 서러움 어머니의 텃밭으로 들어서는데 잡풀 사이 앙증맞은 꽃이 보인다 나는 손전화기를 들이대고 와 달개비 꽃이다 좋아하는데 퉁명스러운 소리 들린다 나는 갸가싫다 어찌 그리 독한지 허리가 아프도록 잡풀이라고 뽑아내면 죽은 듯 엎드려 있다가 비가 오면 줄기마다 파릇파.. 빈잔의 자유(詩集) 2018.10.13
차를 끓이다 차를 끓이다 아득히 멀어지는 환상을 놓지 않으려고 뜨거운 찻물에 나를 담그고 한때의 절창을 꼭 쥐고 바들거리는 나 봄빛처럼 화려한 날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말 그리움은 모두 외로움인 걸 한 줄의 고백으로 가슴을 비우고 속절없이 비틀거릴 때 새벽이 되면 떠나야 하는 그 막막함 .. 빈잔의 자유(詩集) 2018.10.13
오리무중 오리무중 무슨 죄업 그리 많아 몸부림 한번 치지 못하고 어둠에 갇혀버린 그대 어둠을 잘라 먹고 칼날은 점점 날을 세운다 누가 그대에게 시퍼런 칼날을 쥐게 하였나 한 줌의 꽃대 스러지는 소리 목젖을 타고 내리는 신음조차 자지러지는 한밤 무심한 칼날이 스칠 때마다 아프다고 운다 .. 빈잔의 자유(詩集) 2018.10.13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 물처럼 살고 싶네 어디서나 머리 숙일 줄 아는 물의 겸손 낮은 곳으로 만 흐르겠다는 저 고집 겸손을 지키는 저 고집을 배우고 싶네 맑은 마음이 모이면 호수가 되고 모든 걸 다 품에 안을 수 있는 넓은 품 호수 같은 마음 배우며 나 물처럼 살고 싶네 잔잔한 호수를 보라 얼마.. 빈잔의 자유(詩集) 2018.10.13
도시의 벌집에서 도시의 벌집에서 도시의 벌집 한 채 세든 나는 애벌레나 꽃가루도 없이 왕관을 머리에 이고 품위를 지키려는 여왕벌처럼 빈 벌집을 지키며 산다 이웃의 방마다 숨겨둔 꿀을 잃을까 모두 빗장을 채우고 숨죽이고 산다 도시의 벌집은 숨 막히는 적막뿐이다 여왕벌을 지키려 피땀 흘리는 일.. 빈잔의 자유(詩集) 2018.10.13
벽조목과 명장 벽조목과 명장 벼락을 맞고 저승을 다녀온 대추나무 이미 사리가 되어 칼끝을 저항하고 시치미 딱 떼고 어깃장을 놓으며 장인의 손을 희롱한다 자칫 잘못 하면 명품의 생명이 위태롭다 번갯불에 덴 아픈 상처를 어루만지며 조심조심 혼신魂神을 다하는 정성에 토라진 마음을 풀고 나긋.. 빈잔의 자유(詩集) 2018.10.13